2024년 4월 10일에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할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후보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홍보하고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갈 것이다. 국민들은 후보 검증에 더욱 관심을 갖고 적임자가 누구인지 지켜봐야할 시기다. 국회의원을 위한 국회가 아닌 국민을 위한 국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은 2023년 12월 12일 오후 밝게 빛나고 있는 서울 도심과 국회 모습./김지호 기자

2024년 세계는 전쟁 2개와 50여 국의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명이 50여 국에서 선거로 정치적 선택을 한다. 20억이라는 숫자는 세계 경제총생산의 60%에 해당한다(뉴욕타임스 집계).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남아프리카 미국 그리고 유럽 27국(의회) 등이다.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간에 선거는 본질적으로 현상 타파적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거 판은 항상 대립적이며 분열적이고 이 틈을 노린 기회주의나 인기영합주의가 득세할 소지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2024년의 세계는 극도의 불안을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 세계는 자국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다. 피란민·자원·인종·종교 등으로 갈등 구조가 심화될 것이다.

이 중에서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선거는 미국 대통령 선거다. 아니, 기소 4건과 범죄 사실 90여 개가 걸려있는데도 트럼프 후보는 사퇴는커녕 승승장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은 경제 면에서 안보 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바이든과 긴밀히 접촉해 온 윤석열 정부로서는 심각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한 안보 비용을 요구하거나 주한 미군 철수 내지 감축을 추진할 것이며 북한 김정은과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폭 지원에서 발을 뺄 것이고 나토나 중국과의 관계도 재설정할 것이다. 그의 재선은 한마디로 세계 지도에서 미국의 역할을 다르게 그려갈 것이어서 어쩌면 2024년 세계의 최대 이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의 선거도 오는 4월 10일에 치러질 한국 국회의원 선거보다 중요하지 않다. 정치판은 당면한 치명적 상황에 대한 인식도 없어 보이고 이 엄중한 국제 파고에서 살아갈 연명책에 대한 정책적 공방도 없다. 인구 감소 문제, 자국 이기적 경제 흐름, 자원 외교의 한계, 북한과의 무력적 대립 문제 등에 대한 지적도, 토론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은 엊그제 남북은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라며 한국에 핵 무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식으로 협박하고 나섰다. 우리는 남북 관계에서도 더 이상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로지 초점은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이고 공천 여부고 비대위 구성이고 정객들의 이합집산이다.

나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운동권 정치의 청산을 언급한 대목에 주목한다. 그는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하라는 강력한 시대정신”을 언급하며 “이것을 청산하는 것은 단순히 비판만으로 실현될 수 없고 그들을 대체할 실력과 자세를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한국의 4·10 총선거의 의미는 집약해서 말하면 한 시대의 청산에 있다. 한국은 정치적 굴곡의 고비마다 그 시대의 주류를 교체해 왔다. 장기 집권(이승만)의 적폐가 쌓였을 때 군부(5·16)가 들어왔고, 군부가 오래가자 학생들이 앞장선 민주화가 그것을 넘어뜨렸다. 이때부터 대학생 운동권 세력이 20여 년간 좌파 정치를 주도해 왔다. 현 더불어민주당의 170여 석 가운데 100석 넘게 운동권 차지다. 낡고 권위주의적인 보수·우파 세력만으로는 조직과 권모술수가 능한 운동권 좌파를 당할 수 없었다.

운동권 정치는 이제 그 기능과 수명을 다했다. 그들은 너무 오래 특권에 심취했고 유아독존에 중독됐다. 그들은 좌파의 본연인 진보·사회주의를 무시하고 권력에만 기승하려 했다. 그 청산의 칼자루를 쥐고 한국 정치의 신주류로 등장한 것이 윤석열, 한동훈이 주축이 되는 이른바 ‘검찰’이다. 거기에는 과거 운동권이 정권을 장악했던 것처럼 어떤 시대적 당위가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운동권 특권을 교정할 수 있는 적임자는 사정 기능을 가진 검찰일 수밖에 없다.

운동권과 검찰 대립의 승자는 검찰일 수밖에 없다. 운동권은 후속(後續)이 없다. 대학에서 운동권이 대세인 시대가 지났다. 그러나 검찰은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다. 다만 ‘검찰’ 역시 운동권의 특권 의식을 닮아 그것에 안주하면 그들 또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투표장에서 의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이것을 살아가는 시대정신이다. 선거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마찬가지로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술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