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국의 안전보장은 미국과의 동맹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의 핵무장, 중국의 패권주의, 일본의 잠재적 군사력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의 독자적 방어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안보공약은 영원히 불변인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대외(對外) 안보공약은 바뀔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안보는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미국을 믿고 안 믿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상황에 따라 세계경영 방침을 바꿀 수 있다. 미국이라고 천년만년 한국을 지켜야 한다는 법도 없다. 궁극적으로 자기 나라와 국민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만고의 진리에 부합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근자에 미국의 한 군사전략가가 “한국은 독자적인 핵무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그 이유로 “첫째 언제까지 미국을 믿고 갈 수는 없다. 둘째 4년마다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정부가 들어서는 미국 정치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 육사를 거쳐 캔자스대(大)·해군참모대 교수로 있는 에이드리언 루이스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방위공약은 항상 지켜지지 않았다”며 트럼프가 한국 방위를 위해 수많은 ‘청구서’를 내민 사실을 상기시켰다.

사실 주한미군의 숫자는 항상 미국의 대외정책의 변화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였다. 모택동과 거래할 때 닉슨과 키신저는 대만을 내줬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 2사단도 내주었고 그 뒤 카터도 그랬다. 더 거슬러 올라가 2차대전 후 미국은 아시아대륙을 중국에 내주며 동해를 방어선으로 그은 애치슨 라인을 선언해 결국 6·25 전쟁을 유발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공식방문을 계기로 한국의 핵무장 문제가 진지하게 거론되기를 바랐다. 한국 내 찬성 여론도 70%가 넘었고 미국 조야에도 이제 한국의 핵개발 억제의 끈을 슬그머니 놓아줄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루이스 교수 유(類)의 주장이 늘었다. 그러나 결과는 ‘워싱턴 선언’이라는 또 한 장의 종잇조각이었다. 루이스 교수는 ‘워싱턴 선언’을 이렇게 혹평했다. “방위 약속, 긴밀 논의, 위원회 구성 등은 그야말로 말뿐이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들어와서 이런 약속들 그냥 지키겠는가?”

아마도 미국은 핵확산을 우려하는 것 같다. 북한 핵은 공격용이고 파괴용이다. 하지만 남한의 핵은 방어용이고 평화용이다. 미국은 북한핵을 막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 쪽에 미안해서라도 살길을 터줘야 한다. 북한을 못 막았으니 한국만이라도 막자는 논리는 차라리 궤변이다.

미국은 강대국 논리를 즐기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를 동원하다시피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면서 자기들은 내밀하게 중국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엊그제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시진핑을 만나는 장면은 그런 강대국 외교의 뒷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앞에서는 한국으로 하여금 대만해협 자유통행을 거론케 하고 대만 독립을 응원하며, 뒤로는 필리핀을 다시 붙들고 인도 호주까지 동원하는 원거리 봉쇄 정책을 펴면서 정작 시진핑 앞에서는 대만 문제를 꺼내지 않는 미국의 전략을 우리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특히 한국의 핵무장에는 온갖 이유를 대며 거부하면서 대중(對中) 포위망 격인 군사협력체 오커스(AUKUS) 동맹의 일원인 호주에는 핵잠수함을 조기에 공급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악의적으로 보면 백인국가는 믿을 수 있지만 한국은 아니다라는 차별마저 느낀다.

지금 세계의 안보환경과 여론은 우리에게 호의적이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의 핵 보유에 긍정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의 대남(對南) 협박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은 중진을 넘어 선진으로 진입하고 있다. 내년 트럼프가 또다시 집권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바이든은 다르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민주당 정부는 공화당 뺨치게 기회주의적이다. 미국 정부가 언제 중국과 ‘큰 그림’을 그리고 아시아 대륙에서 ‘한 발 물러난’ 현대판 애치슨 라인을 그을지 모르는 일이다. 루이스의 말대로 “한국의 핵무장을 미국의 신뢰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윤 대통령은 6·25때 불리한 여건에서도 휴전의 조건으로 한미 방위동맹을 이끌어낸 이승만의 지혜와 용기와 배짱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핵 방어 장치를 마련하는 지도자는 한국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