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년’을 윤 대통령이 자평(自評)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괄목할 변화와 진전을 이룩했지만 내치(內治) 분야에서는 거야(巨野)에 막혀 답보 상태였다’고. 나는 윤석열 정권 등장의 가장 두드러진 의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탄생과 존재 가치를 이념적으로 부정하는 좌파의 활개로부터 나라를 자유·민주·법치·공정·정의의 궤도로 복귀시키는 보수(保守)의 동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윤 정권의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하지만 모든 정치적 평가가 다면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잘한 것은 ‘당연’하고 못한 것은 ‘부각’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윤 대통령에 대한 지난 1년간 여론조사의 낮은 궤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 특히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윤 정권이 ‘이재명과 대장동’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아직도 헤매고 있는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1년이 지나도록 밝혀낸 것이 무엇인가?” 윤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이 바로 ‘이재명과 대장동’인 것을 감안하면 지난 1년의 과정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윤 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느슨했던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거기에 살을 더 붙인 것은 잘한 일이지만 동맹 복원에 급급한 나머지 핵(核) 문제 등에 너무 미국에 이끌렸던 점도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거명한 ‘거야’(더불어민주당)는 그간 여러 차례의 비리·부정·위선·거짓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 원래 정치판은 ‘상대의 잘못이 나의 장점’이 되는 요철(凹凸)의 세계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노웅래·송영길에서 김남국에 이르기까지 온갖 부정 비리 거짓에 흔들릴 때 국힘당과 ‘용산’(집권 세력)은 저들의 악재를 호재로 이용하기는커녕 스스로의 문제들로 동반 하락(?)하는 무기력을 보여 왔다. 젊은 대표의 축출과 새 대표 선출을 둘러싼 잡음, 당내 최고위원 징계, 당·정 간의 엇박자 등 크고 작은 마찰음이 야당의 흔들림을 오히려 덮어주는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김재원·태영호 두 최고위원에 대한 국힘당의 징계는 공천까지 연계된 헛발질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이 대통령과 반드시 같은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5·18과 4·3에 대한 시각은 오히려 두 의원의 견해에 동조하는 보수층이 훨씬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년 총선을 앞둔 공천의 문제다. 전에도 지적했지만 내년 총선은 단순히 윤 대통령과 국힘당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선거에서 지면 ‘윤석열’ 이름 석 자는 역사에서 존재감을 잃을 것이고 이 나라는 다시 좌파의 늪에 빠지게 된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5년’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정치 생명 보전에 몰두하는 국회의원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더욱 ‘자기 사람’을 쓰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자기 사람’을 원하지만 유권자는 그 ‘지역의 대표’를 뽑는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5년 하고 나가지만 국회의원은 오랫동안 이해가 같을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 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근혜 정권 때 있었던 공천 파동과 그 결과는 공천 개입의 폐해를 일깨워준다. 대통령이 개입한 잘못된 공천은 현역 탈락→무소속 출마→여권 동시 패배로 이어지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그것이 오늘날 ‘거야’의 출발이었다.

이런 사정과 관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이 국회와 소속당을 자신과 한 줄로 세우는 것이 국정의 효율성은 있어 보이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대목에서 공천 개입 여부에 휘말리지 말고 보다 중대한 승부수로 난국을 돌파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번 총선을 자신에 대한 국민의 ‘재신임’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지역의 대표, 즉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자신에 대한 ‘중간선거’ 또는 사실상의 ‘재신임’을 묻는 선거로 받아줄 것을 호소하고 그것을 국민 앞에 공약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어차피 결과는 그렇게 간다. 이번 총선에서 지면 윤 정권은 사실상 일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윤 대통령은 자신을 거는 선거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 공천을 누가 하느냐, 또 탈락과 무소속 출마로 당내 싸움을 유발하고 온갖 잡음과 모략에 휩쓸리기보다는 대통령으로서 큰 바둑을 둘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과반을 못 얻었기에 이번 총선을 대선의 연장인 ‘결선 투표’로 삼는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