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제시한 강제 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해법은 화폭(畫幅)의 절반가량이 비어있는 그림이다. 기시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비어 있는 부분을 메워야 그림의 전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몇 군데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붓이 닿아야 한다. 일본도 미국도 윤 대통령이 큰 정치적 위험을 무릅썼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대통령의 3월 일본 방문, 4월 미국 방문을 눈여겨볼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3·1절 노래를 제창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0여 년 한일 사이는 관계 악화라기보다 공백(空白)에 가까웠다. 그러는 동안 세계 정세와 동북아 안보 환경은 일변(一變)했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은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는 현실이 됐다.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 수도 있다며 급속하게 군사력을 증강했다. 대만이 무너지면 일본은 중국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한국과 일본에 안보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핵, 대만 방어라는 3개 위기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 미국에 비정상적 한일 관계는 큰 부담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먼저 움직였다.

중국을 겨냥해 미국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공급망 체인 재편성 작업이 한국이 소외된 상태에서 국익(國益)과 어긋난 방향으로 진행되는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최근 몇몇 움직임은 일본과 대만 협업(協業) 형태의 반도체 산업에 미국이 힘을 실어주는 듯도 보인다. 삼성·SK 등은 미국에 거액을 투자해 새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 공장 건설 보조비를 받는 기업은 중국에 추가 투자를 해선 안 된다는 반도체법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한국 기업은 직격탄(直擊彈)을 맞게 된다. 일본 반도체산업 흥망사(興亡史)는 반도체 산업이 미국 반도체 정책 변화와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40년 전 미국 정책 변화로 한국은 도약의 기회를 잡았고 일본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윤 대통령이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실 외교를 펴는 두 나라가 ‘목표의 최대치(最大値)’에 집착하면 외교는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기능을 상실한다. 한 나라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상태는 상대에게 가장 불만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맺어진 조약이나 동맹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서로가 약간씩 불만을 갖는 상태에서 결성된 동맹과 조약이 세월을 견딘다.

그 본보기가 1965년 타결된 한일 기본 조약이다. 어떤 조항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실수 탓이 아니라 조약을 타결 짓기 위해 양국이 머리를 짜낸 결과다. 이 허점(虛點) 많은 조약을 토대로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으로 일어섰고 일본은 동북아 안보에 무임승차(無賃乘車)한다는 미국 압력에서 벗어났다. 밀접해진 관계는 조약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조약에 생명력(生命力)을 불어넣었다.

이렇던 양국 관계가 위안부 협상 파기와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거치면서 공통의 동맹국 미국의 걱정거리가 됐다. 국제법 해석에서 과거보다 인권을 중시(重視)하는 경향이 나타난다지만 다수설(多數說)이 아니다. 일본에 유리하게 기운 운동장이다. 위안부 합의는 양국 모두에 불만족스러웠다. 어느 한쪽이 만족하는 상태라면 결론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합의 문안(文案)에는 이 합의가 최종적(最終的)이고 불가역적(不可逆的)이란 표현도 들어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단체 업무 대행(代行)하듯 아무런 대안 없이 덜컥 합의를 파기한 상태로 버려뒀다.

한일기본조약의 청구권 협정은 ‘이 협정으로 양국 간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 간 중요 조약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비준해 효력이 발생한다. 만일 조약의 최종 해석 권한을 최고법원이 쥔다면 외교 교섭은 대법원이 맡아야 한다. 두 사태를 겪으며 일본에서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돼버렸다. 한일의원연맹이 마땅한 일본 측 회장조차 찾기 힘들 정도였다.

윤 대통령 결정에 대한 일본 주류(主流) 반응은 정치적 부담을 지고 내린 결정에 일본이 화답(和答)해야 한일 관계가 안정화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익을 공유(共有)하는 관계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한일 더 나가 한·미·일 관계가 동북아 안정의 주춧돌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다 쓴 치약통 눌러 치약 뽑듯 일본 사과에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본 역시 수백 번 사과했는데도 그때마다 번번이 진정성을 의심받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림의 여백을 어떻게 메울지 기시다 총리의 붓을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