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2회>

<브릿지 맨이란 별명을 얻은 펑리파. 그의 트위터 계정이 폐쇄되기 전 펑리파의 사진을 구해서 10월 15일 샤오량이란 네티즌이 제작한 이미지. 사진/twitter.com>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는가: 개인의 기억과 역사의 기록

2020년 영국 레스터(Leicestor) 대학의 신경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인간 지능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이 바로 “기억(memory)”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대뇌 측두엽의 해마(hippocampus)에 기억을 저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과거의 사건이나 행위를 의미 있게 인식하고 기억하는 해마의 기억 저장 기능이 바로 인간 지능의 주춧돌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지적 능력은 바로 기억이라는 메시지다. 기억력을 상실하거나 어떤 이유에서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 인간의 뇌 기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다행히 대다수 인간은 매 순간 자발적으로 기억을 뇌리에 저장하고, 저장된 기억을 활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문제는 그러한 인간의 기억이 부정확하며, 가변적이고, 때론 자기-기만적이라는 데 있다.

<2022년 10월 13일, 중국 베이징에 등장한 시진핑 반대 현수막. 시위자는 인화 물질에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면서 군중의 시선을 끌고 있고, 행인들은 핸드폰을 들고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twitter.com>

과거사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음은 인간의 기억이 주관적이고, 선택적이며, 전략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사가 정치의 쟁점이 되고, 역사학이 이념전쟁의 무기가 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과거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개개인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은 바뀔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하는 바가 같을 수가 없기에 한 공동체가 과거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대서사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격렬한 논쟁, 심한 경우 이념전쟁까지 수반한다.

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기억이 다양하고 다면적이며, 상이하고 상충적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물러설 수가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선, 다양한 집단과 개개인이 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사상의 시장에서 격렬한 기억의 경쟁을 펼친다. 그렇게 기억의 경쟁을 통해서만 공동체의 일반적 기억이 공유될 수 있고, 공동의 역사의식이 생겨날 수 있다.

중국처럼 공산당이 일방적으로 특정의 역사관을 14억 인구 모두에게 강요하는 나라에서 개개인은 뇌리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가 막강한 일당(一黨)의 권위에 복종하지는 않는다. 어느 사회나 다수의 침묵을 뚫고 마음속 생각을 표출하고야 마는 강직하고 무모한 아웃라이어(outlier)가 있게 마련이다.

<2022년 10월 13일, 베이징 쓰퉁차오. 현수막이 걸린 고가도로 위 시위 현장. 불이 붙은 인화 물질이 연기를 내쁨고 있다. 사진/twitter.com>

2022년 10월 13일 오후 2시 베이징에 나타난 ‘브릿지 맨’의 현수막

2022년 10월 13일 오후 2시 베이징 하이뎬(海淀)구 쓰퉁차오(四通橋) 다리 난간에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파면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의 개막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휴교하고 파업하라! 나라의 도적 시진핑을 파면하라! (罷課, 罷工, 罷免 國賊 習近平)”

그 현수막 왼쪽 옆에 세 구절씩 2단으로 다음 같은 구호가 적혀 있었다.

“코비드 검사 말고 밥을(不要核酸, 要吃飯),

봉쇄 대신 자유를(不要封控, 要自由),

거짓 대신 존엄을(不要謊言, 要尊嚴),

문혁 말고 개혁을(不要文革, 要改革),

수령 대신 선거를(不要領袖, 要選票),

노예 말고 공민의 삶을(不做奴才, 做公民)”

현수막을 내건 40대 중반의 사내는 군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현수막을 내건 후에 바로 그 다리 위에서 상자에 넣어간 인화 물질에 불을 질러 하늘로 시커먼 연기를 피웠다. 고독한 시위자는 현장을 급습한 공안에 잡혀서 어디론가 끌려 갔다. 중국 밖에서야 당연히 표현의 자유라는 공민의 기본권을 행사했다 할 수 있지만, 중국 안에선 이 행동은 사회주의를 사보타주하고, 국가주석을 모독한 중대한 범죄로 취급된다.

시위자는 체포되고 현장의 현수막은 철거됐지만, 사건은 거기서 종료되지 않았다. 우선 이 작은 에피소드는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의 뇌리에 생생한 기억으로 저장되었다.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그날의 1인 시위는 시민들 사이에서 꽤 큰 얘깃거리가 됐을 듯하다. 실제로 차 속에서 현장을 촬영한 한 사람은 “또 분신하는 거야?”하고 말하기도 했다. 입을 통해 전해지는 소문의 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요즘은 SNS의 시대이다. 디지털 혁명에 힘입어 현장에서 촬영된 다수 동영상은 실시간 인터넷을 타고 중국 각지로,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갔다. 통신 매체가 부족했던 30년 전만 해도 이 사건은 큰 사회적 반향 없이 묻혔을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막강한 권력에 비하면 다리 난간에 걸린 현수막은 미약하기 그지없어 거의 무의미한 단말마 비명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지금은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베이징의 나비가 뉴욕의 비구름을 부르듯 외딴곳 1인 시위가 실시간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세상이다. 그날 펑리파(彭立發, 1974- )의 “베이징 쓰퉁차오 항의”는 중국 안팎의 세계 곳곳에서 작잖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우선 중국 곳곳에서 사람들은 속속 화장실 문과 벽에 펑리파의 구호를 옮겨 적고 있다. 화장실에 적힌 펑리파의 구호는 사진에 찍혀 SNS에 올라간다.

<런던 세이트 마틴스(St. Martins) 예술 대학에 걸린 현수막. 펑리파의 현수막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었다. 역시 트위터로 퍼지고 있는 이미지다. 사진/twitter.com>

중국 정부는 신속하게 그 이미지를 모두 삭제하지만, 중국의 네티즌들이 VPN을 사용해 신속하게 해외 사이트로 퍼다 나른 이미지들은 여러 언론 매체를 타고 중국 밖의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뉴욕, 토론토, 샌프란시스코, 런던, 토쿄, 서울, 시드니, 베를린, 홍콩, 타이베이, 전 세계 각국 주요 도시의 여러 대학가에 펑리파의 그 구호가 그대로 나붙고 있다.

그날 중국 공안에 끌려간 후 행방을 알 수 없는 펑리파는 순식간에 중국 민주화의 영웅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에겐 “브릿지 맨(Bridge Man)”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다리 위에서 한 사람이 내건 두 장의 현수막과 그가 피운 검은 연기 한 줄기가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정부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거대한 감옥 같은 중국이란 대륙에서 한 용감한 중년 사내의 행동이 뜻밖의 파장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중국 민주화 운동은 더는 중국인을 위한,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만의 투쟁일 수 없다. 본래 호모 사피엔스로서 전 인류는 공동의 조상에서 나온 형제자매들이다. 세계인의 감시와 비판은 중국공산당을 압박하는 최고의 효력을 발휘한다. 중공 정부는 중국 내부 문제에 대한 외국 정부의 항의를 내정간섭이라 비판하지만, 세계 시민의 항의와 비판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중국 밖의 인간이 중국 안의 인간을 위해 인류애를 발휘하는데, 인간의 기본권을 짓밟는 중공 정부가 대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 붙은 시진핑 반대 포스터. 사진 아래 펑리파의 구호 그대로 적혀 있고, 양옆에는 “아직 미완의 혁명, 동지여, 더 노력해야!”라는 구호가 있다. 트위터를 통해서 전송되는 이미지. 사진/twitter.com>


‘브릿지 맨’의 선배 1989년 6월 5일 베이징의 ‘탱크 맨’

2022년 “브릿지 맨”의 선배는 바로 1989년 “탱크 맨”이다. 1989년 6월 5일, 중공 중앙이 급파한 20만 병력이 톈안먼 대학살을 자행한 다음 날 정오를 막 지날 무렵이었다. 군대가 시위대를 물리치고 도시를 완벽하게 탈환한 상황이었다. 수십 대의 탱크들이 1열로 죽 늘어져서 도심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도로 한복판으로 달려가서 맨몸으로 선두에선 탱크를 막고 선 한 청년이 있었다. 흰색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양손엔 쇼핑백을 들고 있는 안경잡이 청년이었다. 아마도 인근 식료품점에서 점심을 사가는 듯한 행색이었다. 탱크 앞에 선 그는 쇼핑백을 쥔 오른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뭔가 항의의 구호를 외쳐댔다.

<1989년 6월 5일, 베이징으로 진격하는 탱크부대를 홀몸으로 막고 서 있는 “탱크 맨”의 모습. 사진/공공부문>

청년을 발견한 탱크는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돌아가려 했지만, 청년은 재빨리 달려서 다시 그 탱크를 막고 섰다. 청년이 두 걸음 앞까지 다가섰기에 육중한 탱크는 제대로 방향을 틀 수 없어 좌우로 왔다 갔다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거리의 군중은 환호성을 질렀고, 청년은 탱크 위로 올라가서 포신을 잡다가 해치를 열고 탱크 안의 군인에게 뭔가 말하려는 듯했다. 그때 주변 어디선가 심한 총성이 터졌다. 위협을 느낀 청년은 반사적으로 탱크 밑으로 내려와서 좌측 옆에 비켜섰고, 그 틈을 노려 탱크는 다시 우측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청년은 다시 그 앞으로 달려갔다. 결국 탱크의 해치가 열렸다. 고개를 들어낸 군인은 청년을 향해 뭔가 소리쳤지만, 청년은 물러서지 않았다. 잠시 후 저항하던 청년은 푸르스름한 옷을 입은 두 사람에 끌려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1인의 장벽에 막혔던 탱크부대는 그때야 비로소 가던 길을 재촉했다.

길어야 2, 3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저항이었지만, 인근 호텔 발코니에서 그 장면을 발견하고 촬영한 외신 기자가 있었다. 그 동영상은 이후 중국 밖으로 전송되었고, 당시 찍힌 사진들은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아이컨 “탱크 맨”을 만들어냈다. 그날의 “탱크 맨”이 과연 누구였는지, 그 이후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지금껏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탱크 맨”은 당시 19세의 왕웨이린(王維林)이라는 학생이었다.

중공 정부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만, 만약 “탱크 맨”이 당시 19세의 왕웨이린이 사실이라면, “브릿지 맨”과는 불과 4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브릿지 맨” 펑리파가 “탱크 맨”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 “브릿지 맨”의 트위터 계정은 이미 삭제된 상태다. 다만 막강한 중공 정부에 대항해 공개적으로 항의하며 투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33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19세 “탱크 맨”과 47세 “브릿지 맨”은 동시대의 투사들임을 알 수 있다.

“신시대 10년의 대변혁” 발표문에 끼워넣은 시진핑, 향후 10년 집권 의지

물론 중국 관영 매체만 보고 있으면 “브릿지 맨”의 고독한 투쟁은 용광로에 던져진 작은 못 하나의 반향도 못 일으키는 듯하다. 지금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는 중국공산당 제20차 당 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16일 개막식은 1시간 44분 12초간에 걸친 시진핑 총서기의 모두(冒頭) 발표로 시작됐다. 200자 원고지 70매를 훌쩍 넘는 분량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족히 100매를 훌쩍 넘는 장광설을 꿰는 메시지는 한 문장, “중국공산당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전군(全軍), 전국(全國), 각족(各族) 인민을 이끌고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길로 부단히 매진한다”로 축약된다.

공동의 지향 목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목적의 실현 주체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다. 목적의 실현 방법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이고, 동원되는 객체는 전국의 모든 군대와 56개 각족(各族) 인민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인민과 군대를 동원해서 중국식 사회주의 일당독재의 방법으로 중화민족의 웅비를 위해 전진하겠다는 결의다.

<10월 16일 개막식 발표를 위해 인민대회장에 도착한 시진핑. 사진/AFP>

시진핑 정부 10년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어온 구호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발표문 제1장의 제목이 “지난 5년의 업적과 신시대 10년의 대변혁”으로 되어 있다. 5년 전인 2017년 제19대 당 대회 발표문에는 제1장의 제목이 “과거 5년의 업적과 역사적 변혁”이라 되어 있다. 같은 당 대회인데, 이번에만 유독 “신시대 10년의 대변혁”이란 말을 끼워 넣었다. 최소한 10년간 몸소 통치하겠다는 최고 영도자의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2013년 제18차 당 대회의 주제는 “인민 민주주의의 부단한 확대”였다. 2017년 제19차의 주제는 “소강사회 전면 건설의 최종 승리 달성”이었다. 2022년 제20차 당 대회의 구호는 쉽고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다. 대회의 주제를 시진핑 총서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 아래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관철하여, 위대한 창당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자신(自信)하고, 자강(自强)하며, 정의를 지키고 새로움을 창조하여, 힘차고 세차게 분발하여, 굳세고 용감하게 전진하여,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의 전면적 건설을 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추진하기 위해 단결 분투한다.”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어어지는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풍자한 반체제 풍자 작가 파두차오(Badiucao의 작품. 이미지/badiucao.com>

5년 전과 10년 전의 당 대회에 비해 이번 대회의 주제는 왜 이리도 장황한가? 제1장의 제목에서 이미 “신시대 10년의 위대한 변혁”이란 집권 10개년 계획을 화두로 내세운 만큼 비할 바 없이 큰 무엇인가 내세워야 한다는 이념적 압박은 아니었겠나? 딴은 3년 전 만장일치로 헌법의 임기 규정을 부랴부랴 바꿔서 결국 집권을 연장하려 하니 충분히 머쓱했을 수 있다.

본래 과거 중국사의 제왕들은 황위에 추대될 때 주변 대신들의 간청을 못 이겨, 천명을 거역할 수 없어, 어여쁜 백성 방치할 수 없어 두려워 떨며 황송한 마음으로 못 이기는 듯 부득이 권좌에 오르는 장면을 의식적으로 연출했다. 제3기 집권을 노리는 시진핑의 제20차 당 대회 모두 발표엔 그러한 경외와 겸허의 수사는 찾아볼 수 없다.

과연 시진핑 정권 제3기는 어떤 풍랑을 헤쳐가게 될까? “브릿지 맨”의 구호처럼 다수 중국 인민이 경제적 이익과 개인적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위해 “나라의 도적”을 파면하는 휴교와 파업의 투쟁을 벌일 수 있을까? “브릿지 맨”은 몽상가인가? 그의 몽상은 결국 덧없는 망상으로 끝나야 하나? 제20차 당 대회가 진행되는 지금도 중국 어딘가에서 누군가 몰래 화장실 벽에 “브릿지 맨”의 구호를 적고 있다. “나라의 도적 시진핑을 파면하라!”<계속>

<중국 곳곳의 화장실 문과 벽에 적힌 펑리파의 구호들. 그 밖에도 과학=출로, “봉성(도시 봉쇄)=절로(絶路)”라는 낙서도 보인다. 사진/twit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