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경계에 있는 모하비 사막에 설치된 이반파 태양광 집열 단지. 일반 태양광 발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태양광을 거울로 반사시켜 중앙의 태양광 타워로 모은 후 그 집열 에너지로 보일러를 돌린다. 구글이 전체 건설비 22억 달러 중 일부를 부담했다. 집열 거울들이 구글 글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구글은 알이백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 로이터

삼성전자가 지난 달 알이백(RE100) 참여를 발표했다. 알이백은 태양광·풍력 등만 쓰겠다는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의 구호다. 국내 주요 기업 20여 곳, 세계적으론 380여 핵심 대기업이 가입했다. 기업별로 빠르면 2030년, 늦어도 2050년까지 알이백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이 알이백 캠페인은 영국 민간 단체가 2014년 깃발을 올렸다. 그런데 상당히 수상쩍다. 국제 협약은 아니고 자발 캠페인이어서 기업이 여기에 참여해야 하는 법적 의무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도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고, 가입 기업들은 협력 기업들에까지 재생에너지만 쓰도록 종용하고 있다. 애플이 SK하이닉스에, BMW가 삼성SDI에 그런 주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8월 상공회의소 조사에서도 국내 제조 분야 대기업의 29%, 중소기업의 10%가 비슷한 요구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이러면 더 이상 자발적이지 않은 것이 된다. 국제 공급망에 참여하려면 알이백을 추종해야 하게 돼버렸다.

이 상황이 영 개운치 않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미국, 유럽 기업들에는 알이백 이행이 별게 아닌 반면, 한국 기업들에는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펴낸 2020년 판 균등화 발전 비용(LCOE) 분석 자료집이 있다. LCOE란 발전 설비의 전 수명 주기(건설~폐기)에 걸친 비용을 집계한 것으로, 이것이 발전 단가의 기초가 된다. 자료집을 보면 미국은 육상 풍력이 MWh당 40달러 선, 태양광은 40~50달러, 해상 풍력은 60~70달러 수준이다. 반면 원자력은 70~80달러, 석탄은 100달러를 넘는다. 미국 기업으로선 풍력·태양광을 쓰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싸게 먹힌다. 토지 비용이 저렴하고 햇빛·바람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유럽도 북해 해상 풍력은 한국 서남해 풍력의 두 배 이상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 기업은 태양광·풍력 전기만 쓰려면 굉장히 비싼 요금을 치러야 한다. 태양광·풍력 비율도 7.5%밖에 안 된다. 나중엔 재생 전력 공급량이 부족해 알이백 기업들 수요를 채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최악 경우 기업이 재생 전력을 찾아 외국으로 이전해야 하는 사태까지 갈지도 모른다.

한국은 반면 원자력에 강점을 갖고 있다. IEA 자료집을 보면 원전 건설비가 한국은 ㎾당 2157달러, 프랑스 4013달러, 미국 4250달러였다. 균등화 발전 비용은 미국과 프랑스가 한국의 1.3~1.4배 수준이다. 한국으로선 원자력을 무(無)탄소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유리하다. 더구나 원자력 전기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풍력과 비슷하고 태양광과 비교해선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EU는 지난 7월 원자력을 친환경 전력으로 인정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지난해 12월 원자력을 태양광·풍력과 함께 무공해 전력으로 분류했다. 그런데도 알이백 가이드북은 원자력 전기를 배제했다. 값싼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은 못쓰게 하고 대신 비싼 풍력·태양광을 쓰라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알이백이 효율적인 탄소 중립을 방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알이백은 파리협약 기본 원칙인 ‘NDC(Nationally Determined Committment)’에도 배치된다. NDC는 글자 그대로 각국이 여건에 맞춰 자주적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알이백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은 온실가스의 역사적 누적 배출량이 많은 곳이다. 기후 붕괴에 가장 책임이 큰 나라들이 탄소 중립을 명분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강요하고 있다. EU의 탄소국경세나 바이든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결국 탄소 감축을 내세워 자국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작동되고 있다. 알이백도 애초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같은 원자력 강국의 발목을 잡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알이백이 미국·유럽 기업들 이익에 반대되는 것이라면 그들 나라에서 지금처럼 적극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내 일부에선 알이백을 손댈 수 없는 원칙인 것처럼 떠받들고 있다. 그렇게 고분고분 끌려갈 게 아니라 기업, 기업 단체, 관련 학회 등이 알이백의 불공평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논리, 명분, 사실에서 우리가 당당하다. 처지가 비슷한 나라들을 규합해 이익을 지켜야 한다. 태양광·풍력을 소홀히 하자는 것이 아니다. 탄소 중립은 태양광·풍력, 또는 원자력 어느 한쪽만 갖고는 어렵다. 둘 다 힘을 쏟아야 한다. 재생 전력과 원자력을 합하면 우리는 무탄소 전력 비율이 35%가 된다. 다른 나라에 크게 뒤진 상황이 아니다. 우리가 이룬 원자력 분야 성과를 떳떳하게 인정받고 원자력 기술로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길을 터야 한다. 우리가 글로벌 호구는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