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일본 하늘 넘어 태평양 쪽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다음 날 일본 신문에 두 장의 사진이 실렸다. 하나는 초등학교 하급반인 듯한 어린이 10여 명이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몸을 웅크린 모습이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놀란 기색이 역연했다. 다른 한 장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겸한 내각 관방장관(官房長官)이 경보(競步) 선수처럼 총리실로 달리듯 뛰어드는 장면을 담았다. 일본 정부는 북 미사일 발사 직후 미사일 통과 지역에 주민 대피 명령을 내렸다. 고속 열차와 지하철도 일시 멈췄다.

4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직후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아래 사진 가운데)이 총리실에 뛰어들어 가고 있는 가운데 주일 미군 기지가 있는 아오모리현 미사와(三澤)에서 초등학생들이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로 인한 피난 지시에 따라 인근 골목길에 대피해 쪼그려 앉아 있다. /AP 연합뉴스

비슷한 시간 서울에선 합참이 북 미사일 발사 사실을 발표하고, 대통령실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한미 군은 북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 의미로 동해상으로 지대지(地對地) 미사일을 쐈다. 그 과정에서 현무-2 미사일 결함으로 사고가 났으나 밟아야 할 과정은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못해 대응 시늉을 하던 전(前) 정권과는 달랐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긴박감(緊迫感)이 떨어졌다.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 대합실 대형 TV에서 흘러나오는 긴급 뉴스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없었다. 대피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사이렌이 울렸다면 한 번도 그런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으니 도시 전체가 마비될 뻔했다.

등굣길의 햇병아리들도 몸을 웅크리고 골목으로 대피하는 일본과 서울의 무심한 평온(平穩) 차이를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사일 발사 방향 때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김정은이 만드는 위협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익숙해졌다는 건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면 이상(異狀) 징후나 위기를 알아채는 신경이 죽거나 망가진다. 6·25 직전 서부 38선상에선 크고 작은 남북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다 보니 6·25 당일 포성(砲聲)을 듣고 조금 큰 충돌이 일어난 걸로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40년 5월 프랑스에선 독일의 침공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희망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정세 판단을 밀어냈다.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여부를 놓고 양론(兩論)이 있던 우크라이나도 바이든 대통령이 ‘인류 최후의 전쟁’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다. 세계가 ‘생각할 수 없는 사태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북한은 6일 전투기 8대와 전폭기 4대를 띄워 서울 코앞 황해도에서 사격 훈련을 했다. 우리 공군은 전투기 30여 대를 출격시켜 대응했다. 전에 없던 사태다. 그 며칠 전에는 미국 항공모함 편대가 다가오는 쪽으로 미사일을 쐈다. 과거에 못 보던 장면이다. 북한은 지난달 8일 ‘김정은을 비롯한 지휘부가 공격받을 경우’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있을 경우’ 핵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핵무력법을 공표했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사용할 수도 있다는 핵 교만(驕慢)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 상황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동해에서 실시된 한·미·일 군사훈련에 대해 친일(親日) 국방이라고 호통을 쳤다. 한반도 유사시 지원할 미 해군과 공군의 핵심 전력(戰力)은 일본 오키나와와 요코스카에 있다. 양국 합의에 따라 주일 미군을 일본 밖으로 배치하려면 일본의 사전 양해를 얻어야 한다. 이재명식 국방에선 한반도 유사시 지원군(支援軍)이 끊기게 된다. 교만만큼이나 위험한 국방 무지(無知)다.

위기의식 마비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 경기장에서 김정은이 동원한 15만 군중들에게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고 평화 시대가 열렸음을 엄숙히 선언한다’는 연설을 했다. 이 순간을 재임(在任) 중 가장 감격스러운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그즈음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을 끼워주지 말고 직접 소통하자는 친서를 보냈다. 그랬던 김의 눈에 문 대통령이 어떻게 보였을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안보는 목숨 줄이고 경제는 밥줄이다. 정치는 어떤 경우에도 이 두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 경제는 어떤가. 외환 위기가 닥치기 직전 1995년 12월 실업자 숫자가 65만8000명이었다. 다음 해 1월 이 숫자가 93만4000명이 됐다. 하루 1만명꼴로 밥줄을 잃었다. 지금 경제는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모두가 고(高)자 행렬이다. 이래도 괜찮은 건가. 위기 탈출은 위기의식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역사에 위기의식 없이 위기를 극복한 전례(前例)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