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5월 31일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사장(당시)이 포항제철 2고로 화입을 하는 장면.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산업 육성 전략은 포항제철이 생산한 쇳물로 조선업, 자동차산업을 일으키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포항제철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됐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우방이 고개를 돌린 상황이었다. 일본이 자금 전용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포항제철 조기 건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마련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뉴스1

틈만 나면 한국에 와서 강연료를 챙겨가는 일본 학자가 있다. 연구 인생 내내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던 인물이다. 사료 검증 없이 김일성을 미화하면서도 명백한 증거가 쏟아진 테러, 납치 등 북한의 흉악 범죄는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 매스컴은 그런 그를 “일본의 양심”이라고 한다. 한일 역사 갈등에서 한국 편을 든다는 오직 그 이유에서다.

일본엔 이런 부류가 많다. 전후 일본의 자유와 풍요를 즐기면서 세상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가난한 북한을 옹호한 패션 좌파들이다. 그러면서 자유와 풍요를 지향하는 한국을 경멸했다. 정치에선 사회당, 문화에선 이와나미 서점을 중심으로 거대 세력을 구축했다. 이들이 권력을 잡았다면 한국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 국민은 이들을 주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버림받은 그들이 ‘반일’ 깃발을 들고 한국에서 노후 자금을 얻어가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을 세계 지도에서 지워버리려고 한 나라다. 보통 6·25전쟁 때 일을 말하지만 1970년에도 공격이 있었다. 양국 수교를 앞두고 중국은 일본 기업에 소위 ‘저우언라이 4원칙’을 통보했다. 한국에 협력하고 투자하는 일본 기업은 거래를 끊는다는 내용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은 중화학공업에서 협력했다. 북한을 위해 한국을 크기 전에 죽이겠다는 것이다. 한중 수교 때 한국이 대만을 버렸듯 도요타, 미쓰비시, 미쓰이가 한국을 떠났다. 도요타는 북한에도 접근했다. 중국의 위협에도 한 일본 기업이 이 흐름에 제동을 걸었다. 중공업 발전의 모태인 종합 제철소 건설에 협력하던 신일철(新日鐵)이다. 단절 위기에 몰린 협력 관계를 되살렸다.

국교 정상화 때 받은 일본의 청구권 자금이 포스코 건설에 쓰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당연히 받을 돈을 받아서 쓴 건데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배상금이나 경제 협력 자금은 쓰임새를 엄격하게 정한다. 돈이 후진국 정치의 하수구에서 사라지거나 총과 칼이 돼 돌아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 포스코 자금은 원래 농림수산업 용도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한국을 외면했다. 일본 동의가 없으면 제철소 건설은 물 건너갈 상황이었다. 한국의 부탁에 일본 정부는 동의했다.

야스오카 마사히로(安岡正篤)라는 보수주의자가 있다. 일본 정부와 신일철을 설득해 한국에 협력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한학자였지만 일본 정치의 막후 실세로 큰 힘을 발휘했다. 그는 한국의 정통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파제라고 봤다. 이 신념은 자민당 주류의 한국관을 지배했다. 이들의 노력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병철, 박태준 등 전후 1세대 기업인의 자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식민, 피식민 국가 중 독립 후 한일처럼 발전적인 관계를 맺은 경우가 없다. 하지만 한국의 좌파는 “전범의 도움을 받았다”며 한국의 경제 발전을 평가절하한다. ‘전범’ 딱지를 아이들이 쓰는 연필에도 붙인다. 한국이 망하기만 기다리던 엉터리 학자를 “일본의 양심”이라고 추앙한다. 중국에 맞선 일본 기업의 재산을 몰수한다. 나라를 두 번 죽이려고 한 중국에 돈과 기술을 아낌없이 바친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덕분에 살아가면서 한·미·일 군사 협력을 말하면 “차라리 중국과 북한과 손잡자”고 한다. 그들은 현대가 아니라 구한말에 산다. 그러니 끝없이 피아를 혼동한다.

한국의 좌파는 한일 관계를 지속적으로 무너뜨렸다. 문재인 정권의 죽창가는 그 저질 레이스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서 새 성은 쌓지 않는다. 무모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일본을 노리는 것도 아니다. 약한 고리인 한일 관계를 건드려 동북아 안보를 지탱하는 한·미·일 삼각 축을 흔들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반일은 반미의 소극적 표현이자 친북과 친중의 적극적 표현이다.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한일 관계 최악의 시대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파괴만 했을 뿐 새 성을 만들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넓은 시야로 한일 관계를 바라볼 역량이 부족했다./로이터 연합뉴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숨지자 한국 언론은 그를 “일본 보수의 심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야스오카, 기시, 나카소네, 오부치로 이어지는 일본 보수는 그들의 낮은 수를 읽고 넓은 시야로 한일 관계를 이끌었다. 아베 전 총리는 그의 별명처럼 ‘신짱’ 도련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문 정권과 같은 수로 대결해 보수의 격을 끌어내렸다. 그런 점에서 ‘이니’와 ‘신짱’의 시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문 정권은 선거로 무너졌다. 안타까운 경위로 아베의 시대도 끝났다. 시대는 이렇게 필연과 우연이 겹칠 때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는 이들에게 물려받은 난제를 풀기 시작했다. 두 나라는 늘 난제를 풀면서 발전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반드시 방해한다. 무언가를 이루면 그동안 무너뜨린 자들이 다시 무너뜨리려고 선동할 것이다. 걷어차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