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은 애당초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의 작품인데 이것이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거치면서 이제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인의 실책에서 빚어진 것처럼 둔갑을 해버렸다. 많은 국민들은 민주당을 비난하는 것 못지않게 윤 당선인 측에 혀를 차고 있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만찬 회동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윤 당선인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도 소수 야당의 신세를 못 면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의미는 그 선거에서 이긴 사람에게 정부를 맡겨 나라를 운영하라는 국민의 명령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 사정은 덜렁 대통령만 뽑아 놓고 그를 악의적 적대적 환경에 방치한 채 자기가 알아서 살아남도록 방관(?)하고 있는 상태다. 마치 그것까지도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달린 것인 양 말이다. 여야의 압도적 의석 차이라는 구도 아래서는 어느 대통령도 입법을 통한 공약 실천이 불가능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시행령을 통한 길뿐이다.

여기서 두 가지 관점을 제기하고 싶다. 하나는 제도의 문제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부를 선택했으면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국회나 정부기관의 ‘틀’을 짜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에 표를 몰아주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틀’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러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경우 큰 폭의 의석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개 당선자의 정당이 여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처럼 대통령 따로, 국회의원 따로 뽑는 ‘지그재그 선거’는 대통령과 국회가 제각기 반대로 노는 결과를 초래해서 국정의 효율적인 운용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목도해왔다. ‘지그재그 선거’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전례로 볼 때 오히려 집권자의 권력 의지에 순종하는 세력의 집단적 몰표로 인해 의회를 단순한 ‘결재 도장(圖章)’으로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관점은 보수·우파의 정치 관전(觀戰) 태도다. 만일 오늘의 검수완박 사태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위치가 뒤바뀐 상태에서 일어났다면 좌파 지지층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좌파는 그것이 지지 국민이건 언론이건 좌파 정권에 이처럼 재빨리(?) 총구를 들이대지는 않았을 것으로 나는 본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좌파 정권의 허물과 오판에 대해 성급히 반응하지 않거나 비교적 관대하다. 때로는 눈 감거나 축소해서 본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의 언행·전과·가족사에 관대하거나 외면해온 좌파 언론과 지지 세력의 행태에서 충분히 봤다.

그에 비해 보수·우파는 보수 정권에 대해 가혹하리만치 객관적인 경향이 있다. 조그마한 잘못이 있어도 가차 없이 비판하고 비난한다. 그것이 민주 시민의 자질이고 보수·우파의 특징인 점도 있지만, 그 결과 보수는 단결력에서 항상 좌파에 밀렸다. 다시 말해 정치 세력으로서의 좌우 싸움에서 우파는 늘 잘난 척 보편적인 척 행세했고 그 결과 늘 자가 비판적이었고 늘 패배적이었다. 윤 당선인은 아직 취임도 안 했는데 보수·우파 사이에서는 벌써 그에게 실망했다며 ‘혀를 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문 대통령은 물러나면서도 40%를 업고 오히려 기세등등한 언행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오는 6월 1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보수는 새 대통령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냐, 아니면 견제에 더 방점을 찍을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 586 운동권 수뇌부들의 언행을 보면 좌파는 이 선거에서 총집결해 보수·우파 정치를 불구화(不具化)하는 것에 집중할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그 지방선거의 대표적 마당이 교육감 선거다. 교육감 선거는 그 중요성에 비추어 정치의 사각(死角)지대에 놓여있다. 현 교육계 인사는 “오늘날 좌파 세력이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전교조 교육 1세대인 40~50대의 이념적 성향이 뚜렷해지면서 비롯된 것”이라며 “교육감 자리가 또다시 전교조에게 돌아가면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뽑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좌파는 5년 후 또는 10년 후 권토중래를 위해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씨앗을 심는 정신으로 임할 것인 데 반해 보수·우파는 후보의 난립이라는 난장판 위에서 ‘윤석열 효과’에 무임승차하려고 버둥대고 있다. 보수·우파는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으면서도 그것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고 좌파는 대선에서 졌지만 그 후속에서 윤 정부를 괴롭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