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둘리만큼 오랫동안 인기를 끈 만화가 또 있을까.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4월 22일 청소년 월간지 ‘보물섬’에 처음 등장한 이래 TV 애니메이션과 극장용 만화 영화로도 제작돼 어른·아이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일러스트=박상훈

둘리 만화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꼴뚜기별 왕자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였다.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하고 지구의 보물을 찾으러 왔지만, 겉모습이 지구의 꼴뚜기와 같아 번번이 무시를 당하는 모습이 웃음을 불렀다.

우주 비행을 하던 꼴뚜기별 왕자가 현실에 등장했다. 지난 3일 미국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국제 우주정거장(ISS)으로 무인(無人) 화물선 드래건을 발사했는데, 화물 중에 꼴뚜기별 우주인과 똑 닮은 짧은꼬리오징어들이 포함돼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은 화성으로 가는 장기간 우주 비행에 대비해 어린 짧은꼬리오징어를 우주로 보냈다. 이 오징어는 물속에서 녹색과 파란색 빛을 낸다. 몸에 빛을 내는 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광(發光) 미생물과 공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오징어와 발광 미생물을 인체와 공생 미생물의 실험 모델로 삼았다.

인체에 깃들어 사는 미생물은 사람의 소화를 돕고 면역력을 제공한다. 비만은 물론 치매까지 공생 미생물의 영향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장기간 우주 비행은 공생 미생물에게 피해를 주고 결국 우주인의 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오징어의 공생 미생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는 오징어의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볼 계획이다.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날아간 어린 짧은꼬리오징어들. 인체 대신 우주에서 공생 미생물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냈다./NASA

과학자들은 그동안 수많은 동물을 우주로 보내 유인(有人) 우주 탐사의 길을 닦았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한 달 뒤인 11월 3일에는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는데, 그 안에 ‘라이카’라는 떠돌이 개가 실렸다. 당시 우주여행은 편도였다. 스푸트니크 2호는 태양열을 가릴 장치가 없어 라이카는 발사 직후 목숨을 잃었다. 1961년 4월 12일 인류 최초로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라이카의 희생 덕분이었다.

미국도 같은 길을 따랐다. 소련이 자국 과학자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으로 연구를 많이 한 개를 썼다면, 미국은 사람과 같은 영장류를 택했다. 1948~1951년 ‘앨버트' 1~6이라는 이름의 붉은털원숭이 6마리가 우주 비행을 한 데에 이어 1961년 1월에는 침팬지 ‘햄’이 우주로 갔다가 무사 귀환했다. 그로부터 세 달 지나 앨런 셰퍼드는 우주로 나간 첫 미국인이 됐다. 영화 ‘혹성 탈출’ 시리즈의 2001년 작에는 미래 지구를 지배한 침팬지 문명이 과거 인류가 우주로 보냈던 침팬지에서 비롯됐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로 간 떠돌이개 라이카./위키미디어

대형 포유동물의 우주 비행은 1969년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 이후 유인 우주 비행에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크게 줄었다. 라이카의 비극적 최후가 알려지면서 동물 희생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우주 비행의 대상은 더 넓어졌다. 윤리 논란이 있는 대형 동물 대신 실험 목적에 맞는 작은 동물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테면 우주에서 내이(內耳)의 변화는 귀뚜라미의 균형 기관으로 알아보고, 운동신경 변화는 신경세포가 매우 큰 달팽이로 대신 실험했다.

최근 우주 실험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동물은 물곰이다. 절지동물의 이웃인 물곰은 몸길이가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지구 최강의 동물로 불릴 정도로 극한 환경 실험에 안성맞춤이다. 영하 273도 극저온이나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고 수분 공급 없이도 수십 년을 견딜 수 있다. 무인 우주선에 실려 치명적 우주 방사선도 견뎠다. 이번에 짧은꼬리오징어와 같이 물곰도 우주정거장으로 갔다. 2019년 이스라엘이 달로 보낸 무인 탐사선에도 물곰이 실렸다.

지구 최강의 동물로 불리는 물곰. 극한 환경도 견뎌 최근 우주 실험에 단골로 이용된다./Eye of Science

인류는 반세기 만에 다시 달에 가려고 한다. 달 여행이 성공하면 다음은 화성이다. 달이나 화성은 지구 궤도의 우주정거장과 다른 심우주(深宇宙)이다. 그만큼 우주환경도 혹독하다. 과학자들은 다시 우주 생물 실험을 늘리고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99년 작 소설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우주의 어둠을 소리 없이 가로지르는 인공위성… 그 끝없는 우주적 고독안에서 개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라고 썼다. 또 다른 라이카의 희생 없이 우주로 가는 길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