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가슴을 뛰게 한 일이 두 번 있었다. 문 대통령은 5일 전남 신안에 조성될 48조원 투자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둘러본 뒤 “완전히 가슴 뛰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25일에는 국토부 추산으로 사업비가 28조원인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해 “예정지를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설 연휴 임시개통 예정인 전남 신안군 임자2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원 투자협약식을 마친 뒤 전남도청 직원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대규모 지역 사업을 보며 가슴이 뛸 정도로 기쁜 국민은 많지 않다.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에서 전체 국민 중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반대(37%)가 찬성(33%)보다 많았고 모름‧무응답이 30%였다. 국민 다수(67%)가 반대하거나 무관심하고 타당성 논란이 큰 사업인데도 코앞으로 다가온 부산시장 선거를 의식해 정치권이 밀어붙였다.

여권(與圈)은 “선거용이 아니라 국가의 대계(大計)”라고 했지만 가덕도 신공항은 누가 봐도 선거용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덕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가벼운 마음으로 선거에 임하게 됐다”고 했다. 민주당은 부산시장 후보 선출 경선대회를 가덕도에서 열었다. 이 대표는 경선대회에서 “여러분의 지지를 ‘가덕가덕’ 담아달라”고 했다.

여권이 ‘올인’하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이 부산시장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YTN‧리얼미터 조사에서 부산·울산·경남(PK)도 가덕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대해 ‘잘못된 일’이란 평가가 과반수(54%)였다. 매표(買票) 포퓰리즘과 입법 폭주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TBS‧KSOI 조사에선 가덕도 특별법 통과 일주일 전 PK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이 29.7% 대 26.6%였지만 통과 직후 25.8% 대 32.4%로 역전됐다.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과 가덕도 특별법 국회 통과 이후 부산일보‧YTN‧리얼미터의 부산시장 후보 지지율 조사에선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47.6%로 29.9%인 민주당 김영춘 후보를 크게 앞섰다. 가덕도 신공항의 약발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조사 결과다.

‘돈 풀기’ 외에 뚜렷한 전략이 없는 여당으로선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가 모두 쉽지 않은 분위기다. 최근 엠브레인‧케이스탯‧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 조사에서 4월 재‧보선과 관련해 ‘국정 심판론’과 ‘국정 안정론’에 대한 공감이 서울은 48% 대 39%, PK도 45% 대 37%였다. 여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한다면 문 대통령은 곧바로 레임덕 길목에 접어들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도 임기 중 선거에서 패한 이후 지지율 하락으로 레임덕에 시달렸다. 2016년 4월 총선 일주일 전 갤럽 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지율이 43%였지만, 불과 한 석 차이로 여당이 1당을 빼앗긴 직후 29%로 급락했다. 그러고선 지지율이 끝까지 내리막길을 걸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도 최근 40% 안팎이다. 여권에선 “대통령 지지율이 40%인데 레임덕이 가능하냐”란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민심을 제대로 못 읽고 선거 승리와 정권 보위에 집착한다면 자칫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미국 정치학자 일레인 케이마크는 “왜 많은 대통령이 실망 속에 끝을 맺나”란 질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서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은 “임기 말 대통령은 눈앞에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하고 대형 국가정책 등 대표 업적에 치중한 나머지 서민들의 민생을 챙기는 데 소홀하기 쉽다”고 했다.

내세울 업적이 부족한 문 대통령도 남은 임기 동안 ‘가슴 뛰는’ 대형 프로젝트나 남북 관계, 검찰 개혁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민심은 싸늘해질 것이다. 레임덕은 그렇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