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가결 시킨 8일 국회 본회의장 모습. 탄핵소추안 상정에 피켓시위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탄핵을 밀어부친 더불어민주당의원들이 앉아 있다./뉴시스

지난주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해 야당이 주도한 탄핵 가결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대통령제에서 탄핵은 의회와 대통령 간 극단적인 대립을 상징한다. 탄핵은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잘못을 의회가 견제하도록 제도적으로 부여한 권한이지만 사실 매우 예외적인 일이어야 한다. 미국 사례를 보면 조지 워싱턴이 1789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230여 년 역사에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은 한 명도 없었고, 판사 8명만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장관에 대한 하원의 탄핵 가결도 1876년 한 차례 이뤄졌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고작 30여 년을 보낸 우리는 이미 두 차례 대통령 탄핵, 한 차례 법관 탄핵, 그리고 이번 장관 탄핵까지 벌써 네 차례나 탄핵이 야당 주도로 이뤄졌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성사 이후 민주당은 탄핵을 쉬운 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취임 초부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당 소속 일부 의원이 거리낌 없이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에서도 보듯이 민주당은 매우 무거운 제도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

핼러윈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국정을 책임진 처지에서 도의적으로라도 관련 부서 장관을 교체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는 게 필요했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하지만 장관의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분명하지 않음에도, 해당 장관 사퇴 요구를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해서 야당이 거대 의석과 여론에 기대어 장관을 강제로 내쫓겠다고 나선 건 잘못된 일이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나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유권자의 표를 통해 잘잘못을 가려야 할 일이었다.

이재명 대표의 검찰 리스크 때문인지 모르지만 민주당에 부여된 의회 다수 의석은 제대로 관리되거나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언젠가 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무엇을 잘라야 하는지 왜 잘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칼을 꺼내 마구 휘두르고 있는 형국이다. 권력을 잃어 국정 운영을 책임질 수 없는 야당이 정책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도 못할 법안을 단독으로 만들어내고 있고, 이번에는 국민 정서에 기대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한 것이다. 요즘 민주당은 전후 이탈리아 정치의 혼란상을 지켜본 정치학자 사르토리(Sartori)가 말한 ‘무책임한 야당(irresponsible opposition)’의 모습을 닮았다.

과거에도 여소야대 정국은 빈번하게 생겨났지만, 그때 야당은 지금 민주당과 달리 탄핵을 함부로 시도하지 않았다. 법관 탄핵, 장관 탄핵 모두 민주당이 지난 1년 사이에 ‘사상 최초’로 통과시킨 것이다. 특히 이번 탄핵은 대통령이 임명한 참모, 보좌역(Home ‘Secretary’)을 야당이 수의 힘으로 강제로 퇴출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적나라한 ‘힘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힘의 정치는 당의 자신감의 발로라기보다 오히려 당 지도부의 다급함, 초조함으로 읽힌다. 당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 강성 지지층에 대한 과도한 의존, 다수 의석에 대한 자만심이 정치적 무리수로 이어지고 있다. 잇단 강경책에도 당에 대한 중도 민심은 싸늘하고 그래서 다시 강성 지지층을 바라보게 되는 악순환이 생겨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야당 정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건 민주당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이 대표의 일은 개인 문제로 돌리고, 민주당은 불과 5년 만에 권력을 잃게 한 불신과 무능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당다움’은 무책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함께 이번 탄핵은 그저 장관 한 명의 진퇴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 시스템의 작동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는 정치 부재 시대에 살고 있다. 본질상 정치 문제를 사법부로 가져가 최종적 해결을 맡기겠다는 이번 탄핵 시도 역시 정치의 부재, 정치권의 무능을 보여준다. 대립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보였지만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밑바닥에 깔려있었던 김영삼-김대중 시대에 만들어진 시스템이 오늘에 와서는 전혀 다르게 작동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체제 이행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양극적 정당 구도를 타파해서 정치가 나라를 둘로 쪼개지 못하도록 할 제도 개선 노력이 더욱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