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직장 때문에 스웨덴으로 간 열 살 아이가 초등학교를 배정받은 지 일주일 만에 흥분해서 말했다. “엄마, 학교가 재미있어!” 한국에서 학교는 즐거운 곳이라기보단 머리가 아픈 곳이었다. 중학 수학까지 배우고 온 아이들이 태반인 교실에서 수업은 따라가기 어려웠고, 축구를 좋아했지만 체육 시간은 턱없이 적었다.

6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유보통합추진에 앞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서울 송파구 소재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찾았다. 2023.2.6 이태경기자

스웨덴은 달랐다. 담임 외에 보조교사가 있어 아이의 뒤처지는 과목을 보강해줬다. 무엇보다 뛰노는 시간이 많았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엔 무조건 교실 문을 잠그고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몰았다. 가장 좋아한 수업은 목공. 나무의 질감을 느끼며 새와 자동차를 조각할 때 행복했다. 오픈 하우스 날 부모는 깜짝 놀랐다. 한국 교실에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손을 번쩍번쩍 들며 자기 생각을 당당히 발표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기(氣)와 창의를 살려주는 북유럽 교육은 전 세계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일대일 맞춤 수업은 AI 챗봇을 활용해 급속히 진화하는 중이고, 최근엔 아이들 창의성 발현을 위해 교도소처럼 획일화된 교실을 허물고 따로 또 같이 배우는 오픈 공간으로 학교를 리모델링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교육에 이토록 공을 들이는 건 턱없이 적은 인구 때문이다. 인구가 500만에서 1000만 사이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낙오시키지 않고 우수한 인재로 키워내야만 국가를 존속시킬 수 있다.

우리도 한때 북유럽 교육 열풍이 불었지만 금세 시들었다. 맞춤형 교육은 언감생심, 좁은 땅에 5000만 인구가 사는 나라에서 교육은 명문대 진학이라는 바늘구멍을 통해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는 초경쟁의 장이었다. 무너진 공교육이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지들 좋아 낳은 아이를 왜 국가 세금으로 키우냐”는 구시대 정서와 관료들의 현금 뿌리기식 안이한 정책으로 수백조원이 효과도 못 보고 사라졌다.

그사이 ‘출생률 0.8의 저주’가 본격화됐다. 2017년부터 5년간 전국 어린이집 수가 9139곳 줄고, 소아과 600곳, 산부인과 275곳이 폐업했다. 서울의 초·중·고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서울시 학령인구가 2000년 153만명에서 2020년 85만명으로 반 토막 난 탓이다. 2024학년도 수능 응시 인원은 41만5000명 수준으로 역대 최소가 될 전망이다. 이미 시작된 지방 대학의 몰락은 지역경제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주호 장관이 “단 한 명의 아이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며 들고 나온 ‘AI 맞춤형 교육’은 반갑다. ‘챗GPT’처럼 스스로 논리를 구성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시·소설까지 쓰는 인공지능이 출현한 시대에, 교사의 일방적 강의와 오지선다형 문제를 한 개라도 더 맞히기 위해 단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 방식은 진작에 퇴출됐어야 한다.

문제는 대학 입시다. ‘이과의 문과 침공 사태’만 초래하고 끝난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처럼 한국의 교육 개혁은 입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때 언제고 좌초됐다. 이주호 장관이 맞춤형 혁신의 일환으로 언급한 AI 튜터 도입, 고교 학점제, 프로젝트 수업, 차터스쿨 도입, 수능 폐지에 대해서도 교육 현장은 냉랭하다. 조국 사태로 ‘공정성’이 궁극의 이슈가 되면서 수능 비중이 오히려 커진 대입 제도를 손보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배상훈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에 닥친 두 가지 재앙은 저출산과 지역 소멸이고 이는 교육의 문제와 직결된다”며 “학생 한 명, 한 명이 가진 잠재력과 배움의 속도에 맞는 교육을 설계하려면 교육부뿐 아니라 노동부, 산업부, 과기부가 모여 총체적 플랜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모든 연구원들이 챗GPT 를 활용해 업무 보고서를 쓰게 하는 류철균 경북연구원장은 “과거엔 1부터 100까지 사람이 다 했다면 이젠 AI가 98까지 하고 사람은 2, 즉 창의(創意)만 노동이 되는 시대가 됐다”면서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화두로 우리 교육은 전면 개편돼야 한다”고 했다.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유일한 대통령은 김영삼이었다. 그가 추진한 ‘5·31 교육 개혁’은 황폐화된 학교 현장에 자율성, 다양성을 부여해 한국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그로부터 30년, 인공지능이 촉발한 교육 대전환은 어느때보다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한다. 한국의 대입 제도는 교육부, 대학, 교원 단체, 사교육 업체가 자기 밥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켜온 게임이기 때문이다. 1등을 위해 100명의 아이들을 낙오시켜온 교육이 나라의 존속을 위협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