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오후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 나온 젊은이들이 각종 복장을 하고 축제를 즐기고 있다. /이태경 기자

‘국적 불명 서양 귀신 놀음이 그렇게 좋더냐?’ 지난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례를 찾기 힘든 비극 앞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 일부 네티즌들이 내뱉은 비뚤어진 소리다.

나는 그런 발언이 핼러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의 핼러윈은 중세 유럽 켈트족의 겨울맞이 축제 서우인, 고대 로마의 페랄리아, 심지어는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에서 매년 10월 31일 기념하는 ‘망자의 날’과 같은 날짜지만 다른 날이다. 오늘날의 핼러윈은 특정 국가나 종교권의 전통 명절에서 벗어났다. 전 세계 청년들이 공유하는 글로벌 대중문화 축제가 되어 있다.

작년 핼러윈 시즌을 떠올려 보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오징어 게임’ 속 등장인물처럼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난 10월 8일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미국의 팝아티스트 맷 곤덱이 말한 것처럼, 이제 어린이들은 성화(聖畫)가 아니라 만화(漫畫)를 보며 자란다. 오늘날의 핼러윈은 종교가 아니라 대중문화가 중심이 된 새로운 유형의 축제라고 보아야 한다.

핼러윈 참사를 두고 ‘서양 귀신’ 운운하는 게 옳지 않은 이유다. 희생자들, 현장에 운집한 이들은 대부분 20대를 전후한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8년 전 학생 신분으로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청춘을 ‘록다운’당한 세대다. 3년 만에 되찾은 거리로 뛰쳐나온 그들을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다는 말인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부상자의 쾌유를 빌며, 청년들을 위로하면서,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여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할 일이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참사가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올 것이 예상 가능했지만 경찰 등 통제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현장 상황을 찍은 동영상 등을 근거로 누군가 사고 발생 당시 ‘밀어, 밀어’라고 소리치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그런 위험천만한 행동을 저지른 상식 이하의 시민의식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뀐 후로 매주 주말마다 서울 요지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 때문에 경찰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에도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재난과 참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인 지난 30일,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글만 봐도 그렇다. “백번 양보해도 이 모든 원인은 용산 국방부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며 “여전히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출퇴근하는 희귀한 대통령 윤석열 때문”이라는 그의 게시물은, 너무도 부적절하고 황당한 나머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비난받고 현재 내려진 상태다.

바로 저런 태도가 우리 사회를 안전과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안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부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안전 때문에 눈물 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이 만들겠습니다.” 2017년 4월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생명안전의 눈’ 조형물에 적은 다짐의 말이다. 대통령이 된 그는 행정자치부와 국민안전처를 결합해 행정안전부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문 전 대통령 스스로가 앞장서 세월호를 국민 안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대한조선학회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나서서 설명해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현실성 없는 외부충돌설을 고수하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 음모론으로 영화를 만들어 한몫 챙긴 인터넷 언론인 김어준은 지금도 매일 아침 교통방송 마이크를 잡고 있다. 재난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재난의 정치화’를 넘어, 이제는 정치 그 자체가 재난이 되는 ‘정치의 재난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핼러윈은 죄가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비극을 겪는 원인은 ‘서양 귀신’ 탓이 아니다. ‘정치의 망령’ 때문이다. 안전을 정치 논리로 끌고 가는 일은 두 번 다시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고 장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