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거행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장례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국제사회의 중심 국가이기는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영향력을 갖게 된 영국의 국왕 장례식에 세계 200여 국에서 500여 명의 국가 정상과 정부 수반, 왕족 등이 참석한 데에는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여왕 개인의 권위와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1952년 즉위한 이래 오늘날까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영국이 흔들림 없이 이어져 오도록 한 중심 추의 역할을 해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 행렬이 19일(현지시간) 시민들의 작별 인사 속에서 윈저성 내 성 조지 예배당으로 향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여왕의 장례식을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국 국민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여왕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헌신과 기여에 감사를 표했다. 여왕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참배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의 줄 서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운구 행렬 때는 수만 명이 거리에 집결했다. 왕실 폐지를 요구하는 일부의 시위도 있었지만, 대다수 영국 국민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슬픔과 아쉬움 속에 떠나보냈다.

이런 모습이 각별하게 느껴졌던 건 과연 우리나라에는 재임 중에 사랑과 존경을 받고 세상을 떠났을 때는 국민 모두가 슬퍼하며 그의 기여와 헌신에 감사를 표할 수 있는 대통령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한국 정치를 보면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예컨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그 말과 달리 문 대통령은 극도로 분열된 사회를 만들었고 그 자신이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결국 문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아니라 임기 마지막까지 ‘자기 편의 대통령’이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최근 들어서는 우리 사회의 내부 분열도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다. 기존의 지역 갈등에 이념 갈등이 더해졌고, 이제는 세대 갈등, 젠더 갈등까지 사회를 가르고 있다. 이 모든 갈등이 양당의 정파적 대립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타협, 합의의 정치는 아예 기대하기 어렵고 사생결단식 싸움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놓여 있다.

사실 승자 독식의 경쟁을 통해 ‘제왕적’으로 불리는 집중된 권력을 갖게 되는 현행 체제하에서 대통령이 갈등과 다툼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유신 헌법 이래 직선제로 개헌한 87년 체제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통령은 국가원수와 행정 수반의 두 직책을 모두 겸하고 있다.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국가원수와 정파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행정 수반이라는 상충된 역할이 대통령에게 모두 부여되어 있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격화되면서 통합의 상징으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국가원수는 입법부, 사법부를 압도하는 우월적인 최고 권력으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두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는 독점적 권력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만큼 대통령은 더 격렬한 정파적 대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유독 최근 들어 대통령이 이처럼 분열의 중심에 놓이게 된 데에는 권위의 약화와도 관련이 있다. 이는 민주화의 진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리더의 등장 과정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는 익숙한 대통령의 상(像)은 이승만, 박정희, 혹은 김영삼, 김대중 같은 이들이었다. 이들은 강한 카리스마와 권위를 갖춘 대통령이었고, 설사 내가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권위와 강한 리더십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정파적 갈등 속에서도 이들은 국가 최고 지도자로의 권위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경험한 바대로, 또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 것처럼, 이제는 우리 사회가 ‘영웅적 서사’에 기초한 카리스마와 권위를 가진 정치 지도자를 만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제도적으로는 모든 권력을 한데 모아 놓았지만 그걸 감당할 만큼의 권위를 찾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정치 지도자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면서 대통령은 더 쉽게 정쟁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이번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을 보면서 통합과 체제 지속의 상징으로서 최고 지도자의 권위가 갖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위엄을 갖추고 자애와 공감을 보이는 ‘나라의 어른’이라는 존재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이에 비해 정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흔들림을 잡아줄 합당한 정치 지도자의 권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87년 체제’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