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대표적 시대정신 가운데 하나는 소통이다. 가정과 직장, 학교를 불문하고 어떤 사회적 모임에서나 소통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분위기다. 리더나 구성원 공히 소통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때가 바로 요즘이다. 소통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되는 것은 국정이다.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한결같이 국민 소통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식 코드가 소통이라 말할 정도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정권이 결국 소통 빈곤, 소통 부재로 끝났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의 ‘대장동 개발 8대 특혜’ 관련 질의에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PPT 화면을 보며 답변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소통을 안 하고 못 하는 것에 관련하여 수많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로, 언제부턴가 우리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특정 소통 형식이나 언어생활에도 작지 않은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파워포인트(PPT) 프레젠테이션 관행과 그것의 단짝인 개조식(個條式) 문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공개 발표나 공동 작업을 위한 시각 보조 자료로 탄생한 PPT는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말 이후 정보화 열풍을 타고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현재도 각종 회의나 강연, 수업 등에서 PPT는 모임의 상전(上典)이 되기 일쑤고, 이른바 PPT의 달인이 전문가나 능력자처럼 보일 때도 많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 PPT는 국회 본회의장까지 입성했다.

물론 PPT 특유의 데이터 전달력과 감각적 호소력은 소통 미디어로서 대단한 강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PPT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PPT 형식이 이야기를 조각 내고 사안을 단순화할 뿐 아니라 제작 기법과 발표자 언변이 콘텐츠를 압도한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PPT는 참가자들 사이의 인격적 교감이나 면대면 토론을 비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존이나 도요타 같은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현대카드나 KB국민은행 등이 PPT 퇴출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PPT 자체에 무슨 죄가 있으랴. 관건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점인데,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PPT식 글쓰기가 대세로 기운 경우다. 한국인의 문해력(文解力)은 국제적으로 최하위이거나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다. 문해력은 단순한 글 읽기를 넘어 타인과 공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총체적 언어 능력을 뜻하는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글자는 알지만 말뜻은 모르는 실질적 문맹자(文盲者)가 늘어나고 있다. 이때 적어도 그 원인 일부는 PPT가 행정, 경영, 교육, 학술,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개조식 문체를 확산시키는 데 있어 보인다.

“글 앞에 번호를 붙여가며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정의되는 정체불명의 개조식은 키워드 중심 문장이 핵심 기술이다. 따라서 개조식의 주인공은 단연 명사로 대표되는 체언이다. 형용사나 동사와 같은 용언은 조연 기회마저 얻기 힘들며, 조사나 부사는 단역으로도 등장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개조식은 생각과 감정의 복잡 미묘하고도 풍성한 세세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소통에는 원천적으로 역부족이자 부적격인 셈이다.

개조식이 좋아하는 명사나 명사화(名詞化·nominalization) 문장은 세상을 딱딱하고 메마르게 한다. 기본적으로 명사는 ‘닫힌’ 말이다. “명사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만든 독특한 품사”다(심리학자 김경일 교수). 이에 반해 동사는 음식의 육수나 양념처럼 “제 몸을 풀어헤쳐 문장 전체에 글맛을 낸다.”(김정선 ‘동사의 맛’) 주재료에 해당하는 명사에 밀려 늘 찬밥 신세지만 말이다. 한편 부사는 “세계를 흥미롭고 맛깔나게 해주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비록 명사처럼 명료하지도, 동사처럼 활기차지도 않지만 말이다.

언필칭 소통 시대를 맞아 지금 우리는 소통 수단인 줄 알았던 PPT 형식과 개조식 문장이 오히려 불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소통의 맛은 과연 사람 중심의 대면 방식에서 나오고, 소통의 힘은 역시 올바른 어문(語文)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진리가 확인되는 셈이다. 누구보다 비장한 소통 의지로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 내친김에 PPT 줄이기와 개조체 멀리하기를 범정부 차원에서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이는 단지 소통을 늘리는 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디지털 해독(解毒)과 국어 정상화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