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4월 7일 서울 광진구의 한 자동차 판매장에 설치된 군자동 제2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지난주 선거에서 20대는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식 적폐 청산과 부동산 정치에 투표로 답했다. 이 정부는 적폐 청산이라는 복수를 위한 칼날로 국민을 두 동강 냈으며, 자기편 안에서 일어난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권력형 성범죄, 반칙과 특권을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가난하게 살았으니 이해할 수 있다거나, 대의의 희생양으로 포장하며 권력 덕분에 생긴 ‘지대(rent)’를 마음껏 누렸다. 자산 가치 증가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한 현 정부의 핵심 세력이 지대를 추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해결은커녕 부추기기만 한 남녀 갈등 역시 20대의 투표 결과에 반영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 젊은 여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예산 지출이 남성과 여성 삶의 차이와 특성을 반영하여 남성과 여성에게 평등하도록 분배한다는 성 인지 예산(gender budget)을 국방 예산과 유사한 수준으로 증가시켰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폭력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한정하여 남성 피해자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여성 장관을 기용하여 고위직 여성 비율을 늘리고 성별 임금 격차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인다고 했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성 인지 예산 확대로 양성평등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있지도 않으며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남녀를 차별하는 입법이 되고 말았다. 여성 장관들 발탁은 무능과 정책 실패로 의미가 퇴색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레토릭으로 전락하고 한일 외교 관계의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한 발짝도 나간 것이 없다. 양성평등의 경제적 핵심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성별 임금 격차는 30대 기업의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을 기준으로 할 경우, 1999년 65.8%에서 2019년 66.7%로 제자리걸음이다.

진영 내에 여성에 대한 성범죄 가해자가 수두룩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적지 않은 문 정부 인사가 미투 가해자였고, 여성 친화를 외치던 서울 시장은 권력형 성범죄 가해자가 되어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했다. 성 평등을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피해 호소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박원순의 피해자에 대한 잔인한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아니라 여성 표를 얻기 위한 술수로 다양한 편 가르기에 덧붙여 화룡점정으로 남성과 여성 편 가르기를 양념으로 추가한 대통령에 불과하다.

20대 여성의 표심은 갈 곳을 잃고 분산되었다. 가짜 페미니즘 정권의 실상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양성평등 수준은 갈 길이 멀다. 성 평등 수준은 세 가지 방식으로 측정하는데, 성 불평등 지수(GII·Gender Inequality Index)는 유엔이 모성 사망비 등 건강과 중등 교육 수준, 경제활동 참가율로 측정하는 지표다. 우리나라는 건강과 교육 수준이 양호하여 상위권을 유지하는 지표다. 그러나 남녀의 성취 수준을 성비로 측정하는 성 개발 지수(GDI·Gender-related Development Index)나 세계경제포럼이 산정하는 성 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상으로 우리나라는 최하위 그룹에 속한다. 중장년 세대에서 가부장적 사고, 유리 천장, 독박 가사와 육아, 사회 곳곳에 녹아있는 남녀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대한민국 여성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성평등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당연한 가치이며 성범죄 없는 세상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문제는 20대 남성이 과연 가부장적 사고를 드러내고 남성 우위의 이득을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의 헤게모니를 누렸느냐는 점이다. 노동시장 진입 전이거나 진입 초기에 있는 20대 남성들은 치열한 입시·입사 경쟁에서 성별 관계없이 경쟁했고 사회 초년생으로 누군가에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20대는 남녀 불문하고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한 세대다. 그런데 남성이 경제적 책임을 더 져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문 정부는 20대 남성을 부동산 정책 실패와 여성 표심 공략을 위한 편 가르기 전략으로 더 한쪽으로 몰아붙였다. 그에 대한 응답이 20대 남성의 투표 결과다.

20대는 산업화·민주화 갈등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노동을 통한 소득으로는 자산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어 분노하는 것이며, 바늘구멍 같은 입사 시험을 뚫기 위해 노력하는데 공정하지 못한 룰을 발견했을 때 분노하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기회와 절차의 공정을 보장하고, 젠더 갈등을 정치에 악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양성평등 실현을 시대의 화두로 삼는 위정자가 필요하다. 여성을 표 얻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집단이나 특정 성을 적대시하도록 부추기는 정치인은 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