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더 글로리' 캡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파트2 공개 사흘 만에 넷플릭스 TV 시리즈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학교 폭력 피해자 ‘문동은’(송혜교)이 18년 뒤 가해자인 ‘박연진’(임지연)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그중 가장 와 닿은 대사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매달려 얻는 게 무엇이냐는 물음에 드라마는 이렇게 답했다. “피해자가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과 명예, 그것뿐이죠.”

이 지난한 복수극 제목이 ‘더 글로리(영광)’인 이유다. 김은숙 작가는 “학교 폭력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금전적 보상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하더라”면서 “‘사과로 얻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존엄과 명예,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거구나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해묵은 한일 관계가 겹쳐 보였다. 폭력 피해자인 문동은을 한국에, 가해자인 박연진을 일본에 대입해보자.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닌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였다. 그러니 일제의 폭력으로 존엄과 명예를 잃어버린 강제 노역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안’이 온전한 보상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문동은이 18년 뒤 연진을 찾아가서 무작정 사과를 요구했다면, 박연진이 잘못을 뉘우쳤을까. 연진은 동은에게 사과할 마음이 없다. 심지어 18년 전 동은의 엄마는 연진의 엄마에게 돈을 받고 학교 폭력 사실을 덮기로 했다. 연진은 “다 지난 일 아니냐. 심지어 너희 엄마가 돈까지 받지 않았느냐”고 나올 테다.

그럼 문동은은 어떻게 했을까. 치밀하게 증거를 모았고, 악행을 드러내 주변인이 하나둘 연진을 떠나게 했다. 연진의 주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자멸하게 하였다. 일본 역시 사죄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올해 초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추천서를 다시 제출하면서도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은 기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피해자들이 사과를 요구해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때 준 경제 발전 자금으로 배상 문제는 끝났다고 반복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과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조성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제 우리에겐 백범 김구도 그렇게 소원했던 ‘문화의 힘’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보고 일본의 만행을 알게 됐다는 해외 시청자가 많았던 것처럼 말이다. 전문가들 또한 한일 갈등을 부각하기보다는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행태가 인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해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도쿄에서 10년을 산 BBC 특파원은 최근 기사에서 변하지 않는 지배층과 고루한 정치, 인종차별적 문화 등을 지적하며 “일본은 이제 과거에 갇혀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글로리’를 되찾을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