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아워크라우드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 2023′에 참석한 스타트업 창업가들과 투자자들이 행사장을 꽉 채운 모습. 이날 행사에는 이스라엘 스타트업 300여곳이 부스를 차려 미국·아랍에미리트·한국·싱가포르 등 전 세계 80여 국에서 온 투자자 9000여 명을 맞이했다./아워크라우드

지난 14일부터 사흘간 ‘창업 국가’라 불리는 이스라엘에서 현지 스타트업 업계 인사 십수명과 대화를 나눴다. 그들과의 인터뷰엔 공통으로 기자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대목이 있었다. 성공을 자랑해도 부족할 시간에 실패 경험을 자꾸 얘기하고 싶어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겉으로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속으로까지 그리 믿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이런 불문율을 깨는 사람들 같았다. “사업을 여러번 접어 봐서 실패가 익숙하다”는 사람, “창업 실패로 남의 회사에 잠깐 다니고 있지만 곧 재창업할 것”이라는 사람. 실패를 감추기는커녕 “실패가 쌓인 만큼 내 도전은 성숙해졌다”며 좌절의 경험을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는 근거로 삼고 있었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자신의 실패담엔 꼭 ‘후츠파(Chutzpah·저돌적) 정신’을 곁들여 말했다. 연 수백개의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고, 파괴적 혁신을 위한 도전을 장려하는 이스라엘의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에 기대 지난해 6.3%의 쾌속 경제성장을 이뤘다. 창업이 활성화되며 이스라엘 내 건설·소비·투자 경기가 모두 활황을 이룬 덕이다. 모두가 한두번의 좌절로 도전을 멈췄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결과다.

하지만 실패를 받아들이는 용기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인재에 대한 믿음과 그들의 도전을 긍정하는 사회 분위기다.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대부분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업체들이고, 창업가는 기술자들”이라며 “사업을 접었다고 인재가 한순간에 낙오자가 되진 않는다”고 했다. 최정예 군부대, 세계 정상급 대학에서 기술을 공부한 이들이 창업에 나설 경우 한두번 실패해도 사회 전체가 이들을 믿고 기다려준다는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한 창업가는 “이런 믿음이 실패를 막다른 골목(dead end)이 아니게 해준다”며 “실패가 두렵지 않을 수 있는 이유”라고 했다.

이스라엘에선 기술공무원이나 테크기업 직원들, 또는 교수들이 중년에 늦깎이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 보험테크 회사 ‘레모네이드’의 창업자 대니얼 슈라이버는 1997년 첫 창업 실패 후 샌디스크 등 테크회사를 다니다 40대에 회사를 나와 레모네이드를 세웠다. 이 회사는 창업 5년 만인 2020년 16억달러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는 “20대보다 경험이 많은 40대가 창업한 기업의 생존율이 아무래도 높다”며 “하지만 누구든 멋모르던 시절에서 자라야 하는 것 아닌가. 젊은 좌절이 성공으로 이어지길 기다려주는 건 온 사회의 몫”이라고 했다.

한국은 분위기가 다르다. 저돌성보단 안정성을 우선시한다. 대기업에 다니다 창업을 하겠다는 친구를 보면 일단 말리고 본다. 금융권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나와 창업 실패를 경험한 한 30대 창업자는 “재정적 실패보다 무서웠던 건 실패했다는 사회적 낙인”이라고 했다. 동창회에 얼굴 내밀기 힘들고, 다시 취직하라는 가족의 성화가 거세 재도전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국력이 되는 이스라엘을 보며, 우리에게도 그들처럼 실패를 반기는 여유가 생기길 바라게 됐다. 창업가들의 가능성이 사회적 저평가에 사장(死藏)되진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