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뜬금없이 체육 전교 1등을 한 적이 있다. ‘오래달리기’를 압도적으로 잘해 높은 점수를 받은 덕이다. 1200m를 6분대로 주파해야 최고 점수를 받는데, 반에서 많아야 한두명 정도가 최고점을 받았다. 본격 수험 생활에 돌입한 반 친구들은 체력 저하로 거의 걷다시피 했다. 나 홀로 민망한 독주를 벌이고 가장 먼저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내 나름대로 체득한 비법도 있었다. 출발부터 선두를 지키며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다 보면 남들은 뒤처지고 혼자 달리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는 나와의 싸움이다. 마지막 두 바퀴를 남겨놓고는 이를 악물고 달린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독기로 버텨야 하는 구간이다. 곧 끝날 질주라고 생각하면 잠깐의 호흡곤란과 허벅지 통증쯤을 참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러닝화를 주섬주섬 챙겨 신고 나가 뛰었다. ‘취준생’ 시절에는 우울한 마음을 떨쳐내려고 울면서 러닝머신을 뛴 적도 있다. 고통을 참고 견디고 버티면 어쨌든 끝나니까. 그 감각이 필요해서 뛰었다.

그러다 올 초에 사달이 났다. 스트레스를 다스리겠다며 매일 저녁 동네 천변을 뛰다가 무릎이 나가버렸다. 피로한 상태에서 과하게 달린 것이 화근이었다. 한 달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절뚝였다. 충격파와 도수 치료를 병행했지만 한번 망가진 무릎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왕년의 ‘체육 전교 1등’은 매일 관절 영양제를 챙기고 주기적으로 도가니탕을 먹는 사람이 됐다. 많이 걷는 날에는 무릎 보호대를 차고, 웬만하면 뛰지 않는다.

불과 서른 남짓한 나이에 무릎이 고장 나다니. 억울할 때면 여태 내 무릎에 실렸던 하중을 하나둘 떠올려 본다.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몰아붙였다. 물론 누군가는 뒤에서 이렇게 숙덕거릴지도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무릎도 나약하다.” “네 무릎에는 야망이 없다.”

무릎이 야망과 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무릎에도 야망이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전 세계적으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라는 말이 유행한다. 일에 과몰입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MZ세대의 소극적 업무관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적잖은 이가 이런 태도로 회사에 다닌다.

따지고 보면 ‘조용한 퇴사’라는 말에는 부정적 함의가 덧씌워져 있다. 일에 열정을 잃어 퇴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조용한 퇴사자’ 중에 농땡이를 피우거나 태업하는 사람은 잘 보지 못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도 있지만, 이는 주로 업무 시간 내에 발휘하는 편이다.

초과근무로 일에 대한 열정을 증명하고, 업무 성과가 아닌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평가받는 낡은 조직 문화를 거부하겠다는 ‘요즘 애들’의 선택을 표현하는 좀 더 적확한 단어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효율적인 버티기(Efficient staying)’는 어떨까. 어딘가 고장 나기 전까지 참고 견디기보다는 스스로 능력치에 맞게 업무 구조 조정을 하는 게 맞지 않나. 비 오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시큰거리는 무릎을 주무르며 드는 생각은, 무작하게 참고 버티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