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한국 대중음악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기점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2018년을 꼽을 것이다. BTS가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빌보드200) 1위에 오른 해. 특히 이 시점을 계기로 대중음악 담당 기자의 업무에 크게 생긴 변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국내 차트뿐 아니라 빌보드 차트 기록을 챙겨 보게 됐다는 것. 기자들만 변한 것이 아니다. 소속 가수들의 앨범을 홍보하는 음반 기획사들 또한 이제는 ‘빌보드 성적’을 성과 지표로 홍보하게 된 지 오래다. BTS를 시작으로 국내 아이돌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활약상이 계속 이어지고, ‘K팝 한류’란 이름이 고유 대명사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변화다.

빌보드가 2021년 7월 19일(현지시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세 번째 영어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정상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달 9일 발매된 '퍼미션 투 댄스'는 앞서 7주 연속 핫 100 1위를 기록한 '버터'(Butter)를 밀어내고 정상에 등극했다. 사진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퍼미션 투 댄스'. 2021.7.20 /빌보드 트위터 연합뉴스

그런데 요즘 이런 변화가 점점 고민이 되어 가고 있다. 최근 오전부터 나의 메일함에는 온갖 빌보드 차트 순위 기록을 적은 보도자료들이 가득 들어찬다. 유명 아이돌 그룹뿐만이 아니다.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 그룹들은 요즘 빌보드 차트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것이 아닌 ‘처음 진입했다’는 내용만으로도 홍보 자료를 돌린다. 반면 새로 나온 곡이 어떤 곡인지에 대한 설명은 대개 한두줄, 그마저 ‘xx 장르’란 한 단어로 설명이 끝날 때도 많다. 이럴 때면 자신들의 곡의 매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빌보드 차트로 치환되는 것인지 혼란이 생긴다.

美 음악 잡지 빌보드 매거진 2019년 3월호에 K팝 걸그룹 최초로 표지를 장식한 블랙핑크. 빌보드 차트는 빌보드에서 매주 싱글과 앨범 성적을 합산해서 발표하는 차트로 음악 순위 차트 중에서 대중성과 공신력을 인정 받고 있다. /매거진 빌보드

최근에는 대부분 아이돌 그룹이 자신들의 앨범과 신곡을 ‘금요일 오후 1시’에 내는 것이 규칙처럼 자리 잡기도 했다. 미국 동부 시각 기준으로 금요일 0시인 이때는 빌보드 차트가 그다음 주 순위 집계를 시작하는 때여서 빌보드 성적을 높게 나오게 하기 위한 시간대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차트의 면면을 보면 더욱 고민이 깊어진다. 통상적으로 빌보드에서는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200′과 메인 싱글 차트 ‘핫100′ 두 차트의 공신력을 가장 높게 본다. 그런데 소속사들은 2018년도쯤부터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등 잘 알려지지 않은 부가적 성격의 차트 성적들을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이 차트들에서 거둔 성적들이 “무의미하다”고 폄하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가수들이 왜 현지에서도 부각되지 않는 차트들까지 동원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한 대형 소속사에서 새로 선보인 신인 걸 그룹 기자 간담회에서도 비슷한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그날 기자 간담회에서는 분명 기자들이 멤버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는 질의 응답 시간이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이 걸 그룹과 소속사는 앨범 소개 도중 갑자기 “해외 기자들이 자신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왔다”며, 일본과 미국의 두 곳 연예 잡지의 이름과 그곳에서 던져왔다는 질문을 무대 위 화면에 준비한 파워포인트 자료로 띄웠다. 이를 읽고 답하는 시간을 앨범 소개 시간의 일부에 포함시킨 것이다.

K팝 한류와 인기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참 자랑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국내 대중음악계에선 “해외에서 뜨면 국내에서도 뜬다”란 공식에 매몰돼 음악이 아닌 음악 성적을 부각하려는 노력이 지나쳐 보인다. 어느 새 우리는 음악을 즐기는 방법을 음악 그 자체가 아닌 성적에서 찾게 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