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정신을 축구로 배웠다. 정확히는 1993년 10월 29일 새벽에 배웠다. 카타르에서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일명 ‘도하의 기적’이 일어난 날이다. 이라크 축구 선수 움란 자파르가 경기 종료 30초 전 일본과 2대2 무승부가 되는 헤딩골을 넣어준 덕분에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 월드컵에 갔다. 사흘 전 해태가 삼성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누르고 우승했던 뉴스가 싹 잊히고, 온 나라가 ‘일본을 자빠뜨린 자파르’에 열광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이 기적은 한국이 같은 시각 북한에 3대0 승리를 거뒀기에 가능했다. 한국에 지면 ‘아오지 탄광에 끌려갈지도 모르는’ 북한 선수들이 사력을 다해 전반전은 무득점으로 끝났지만, 후반 들어 고정운·황선홍·하석주의 득점으로 골 득실에서 일본을 앞설 요건을 채웠고 자파르의 축복이 더해졌다. 이기고도 표정 없던 한국 선수들이 갑자기 만세 부르며 뛰던 모습이 강렬하게 각인돼, 낙담하는 순간마다 도하의 10월을 떠올리며 견디는 습관이 생겼다. “나도 일단 세 골은 넣고 보자. 그래야 ‘자파르’를 기대할 자격이 있어.”

도하의 그 밤이 축구 경력 화려한 미우라 가즈요시를 눈물짓게 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미우라는 1990년대 일본 축구 대표팀의 간판 골잡이로 활약하며 A매치 89경기 55골을 기록했지만 월드컵은 한 번도 못 가봤다. 27년 전 도하가 뼈아팠다. 한국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이라크전에선 전반 5분 선제골을 넣었지만 마지막 30초를 못 버텨 울었다. 4년 뒤엔 일본의 프랑스 월드컵 본선행에 앞장서고도 본선 명단에서 빠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월드컵 한(恨)이 너무 짙어서일까. 그는 은퇴를 거부하고 지금도 요코하마FC 소속 현역 선수로 뛴다.

1967년생인 미우라는 지난달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맞붙은 J1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해 일본 축구계 최고령 출전 기록(53세 6개월 28일)을 세웠다. 종전 기록(나카야마 마사시·45세 2개월 1일)보다 월등한 수치로, 국제축구연맹(FIFA)을 비롯해 국내외 매체가 그의 노익장을 칭송했다. 대단한 자기 관리의 방증이겠지만, 이게 정말 의미 있는 기록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17년 3월 이후 골이 없다. 2018시즌 9경기(총 56분), 2019시즌 3경기(총 109분) 출장에 그쳤고, 올 시즌은 팀 내 체력 테스트 통과도 버거워했다. 실력으론 방출이 마땅하지만, 마케팅 효과가 크다는 이유로 자리를 차지하고 후배들에게 체력 부담을 떠안기며 출전을 강행한다. 요코하마FC의 올해 성적은 18팀 중 13위. 상대 팀은 “미우라가 나오면 한 명이 덜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색한다. 올 초 75세 이집트인이 자국의 3부 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어 최고령 프로축구 선수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미우라가 이 기록을 깨려면 적어도 22년을 더 뛰어야 한다. 부친조차 은퇴를 권하는데도 그는 1년에 한두 경기씩 의전 받듯 뛰면서 출전 신기록을 쓸 태세다. 그보다 어린 홍명보, 지네딘 지단 등은 은퇴해 감독이 된 지 오래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노래하는 시대이지만, 걸맞은 능력도 없이 나이만 내세워 이기려 들면 눈꼴사나운 ‘꼰대’로 전락한다. “일본 유학 다녀오면 토착 왜구”라고 망언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나 같은 대선배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한 노(老)소설가와, 국정감사 질의하는 20대 여성 국회의원을 ‘어이’라고 부른 70대 기업인, 그리고 지천명 미우라를 보며 다짐했다. 나이를 벼슬 삼아 살지는 말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