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의 정면 야경. /문화재청

지난 12일 문화재청 국정감사를 하루 종일 지켜봤다. 21대 국회의 첫 국감인 만큼 어떤 의원들이 매서운 질책과 비판을 쏟아낼지 궁금했다. 결론은 ‘역시나 맹탕’. 예년처럼 윽박지르거나 호통치지 않고 차분히 질의하는 의원들 모습은 일단 신선해 보였다. 하지만 몇몇 의원들은 ‘해외 문화재 환수’나 ‘목조 문화재 화재보험 가입’ 같은 단골 레퍼토리를 게으르게 재탕했다. 정책 질의를 해야 할 국감에서 버젓이 지역구 민원을 제기하는 의원들도 있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국보 1호 교체’ 주장도 또 나왔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앞서 8일 시민단체와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호 지정’ 청원을 냈고, 이날 국감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해묵은 논란이다. 1996년 국보 1호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 나왔다. 김영삼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가 한창일 때였다.

숭례문과 국보 1호의 인연은 8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4년 일제가 조선의 보물을 지정하면서 숭례문에 보물 1호를 부여했다. 일제가 숭례문의 가치를 평가했던 것이라기보다 편의상 1호를 붙인 것이라고 알려져왔다. 해방 후 우리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1962년 시행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숭례문은 국보 1호가 됐다.

허윤희 문화부 차장

1996년 국보 1호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의견은 이랬다. “국보 1호는 우리 문화재의 상징인데 숭례문으로는 약하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는 문화재로 1호를 바꿔야 한다.”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국보 번호는 가치의 우열 순서가 아니라 단순 관리 번호”라고 반박했다. 양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조사 결과 ‘반대’가 높아 국보 1호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2005년 또 한 번 논란이 점화된다. 감사원이 ‘상징성 부족’이라는 이유를 들어 문화재청에 국보 1호 교체 문제를 제기했고,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새로운 국보 1호로는 훈민정음이 적합하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이때도 국보 1호는 바뀌지 않았다. 문화재위원회가 ‘현행 유지’로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그 뒤 숭례문이 화재로 불탔을 때도,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잊을 만하면 누군가가 ‘1호 교체’를 들고나왔다.

왜 이런 논란이 반복될까. ‘국보 1호’를 금메달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숭례문은 국보 24호인 석굴암이나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가치가 뛰어나서 1호인 것이 아니다. 문화재의 지정 번호는 가치 서열에 따라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정된 시간 순서에 따른 관리 번호일 뿐이다. 이날 전 의원은 “그럼에도 1호의 상징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교육 현장에선 1호만 기억한다”고 했다. 문화재를 서열화하는 이 발상이 위험한 것이다.

전 의원 주장대로 국보 1호를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바꾼다고 치자. 간송 전형필이 수집한 이 해례본은 맨 앞 두 장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만약 앞의 두 장이 모두 붙어있는 더 온전한 해례본이 발견된다면, 국보 1호를 또 바꿀 것인가. 종목과 성격이 각기 다른 국보 340여 점을 어떻게 줄 세우기 한다는 말인가.

이 해묵은 논란을 끝내는 방법이 있다. 국보의 지정 번호를 아예 없애는 것이다. 국보 1호 숭례문,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이 아니라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부르면 된다. 실제 우리처럼 지정 문화재에 번호를 매기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도 국보 번호는 정부의 관리용 번호일 뿐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국감에서 이 소모적인 논란을 지켜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