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세계를 휩쓴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 만이 아니다. 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인구 269만명의 소국인 리투아니아에까지 번진 ‘반중(反中) 감정’도 만만찮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가 올 6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인 14개국 가운데 ‘반중 감정’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나라가 여럿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불붙은 '반중 감정'은 2021년도를 휩쓴 또 하나의 세계적 사건이었다. 인도 다람살라시에서 시위대가 '보이콧 차이나(중국 불매)'라고 쓰인 반중(反中)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조선일보DB

◇‘反문명적 중국’에 거부감

우리나라의 ‘반중 감정’은 일본(88%)·스웨덴(80%)·호주(78%)에 이은 4위다. 2015년까지 30~50%이었으나 2017년 처음 60%를 넘었고 올해는 77%로 작년 보다 2% 포인트 더 상승했다. 한국 국민 4명 중 3명 이상이 중국을 ‘비호감 국가’로 꼽는 것은 중국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인 중국에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없다.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의 인권 유린과, 홍콩에서 국가보안법 강행 통과, 글로벌 표준을 무시하는 ‘늑대 외교’ 등은 모두 반(反)문명적이다.

하지만 잔여 임기가 130일 남짓 남은 문재인 정부는 국민 정서를 역주행(逆走行)한다. 이번 달 외교 일정만 봐도 그렇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공산당 정치국위원의 톈진회담(3일)→호주에서 “베이징 동계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검토 않는다” 발언(13일)→4년 6개월만의 한·중 외교차관 전략 대화(23일)….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2월 13일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연합뉴스

◇“중국에 협조하는 文 정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동맹국들 중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협조·순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중립적이던 유럽연합도 반중(反中) 기조로 돌아섰다.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중국에 대한 문 정부의 태도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벌인 해프닝도 실망감을 키웠다. 이 위원회는 화상(畫像)회의 행사에 3개월 전 공식 초청한 오드리 탕 대만 행정원 디지털부 장관의 참석을 이달 16일 행사 시작 몇 시간 전인 당일 아침에 전격 취소했다. ‘중국 눈치보기’가 낳은 외교 결례(缺禮)였다.

2016년부터 대만 행정부의 디지털 장관을 맡고 있는 오드리 탕(중국명 唐鳳). 대만 컴퓨터의 10대 거인으로 꼽혀온 그녀는 1981년 생으로 유명 해커 출신이다./오드리 탕 제공

궁금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말인데도 왜 이렇게 중국에 매달릴까 하는 점이다. 취재를 종합하면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국정 성과가 미미한 문 정부가 외교안보 치적(治績) 쌓기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임기말 ‘외교 치적’ 쌓기

집권 전반기에 북한 김정은과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한 문 정부는 중국에는 ‘사드 3불(不)’ 약속을 하며 조속한 한한령(限韓令·중국내 한국 제품 및 한류 제한 조치) 해제를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 남북 관계는 보수 정부 때보다 더 악화됐고, 한중 관계는 당초 기대를 밑돈다.

경북 성주에 있는 사드 기지에 군 헬리콥터가 물자를 옮기고 있다./국방부 제공-조선일보DB

‘한한령’ 해제가 이뤄지지 않고, 1992년 양국 수교후 처음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방한(訪韓)이 문 정부 들어 중단된 게 증거이다.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의 3박4일 방중(訪中) ‘혼밥 외교’도 아쉬운 부분이다.

두 번째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다급함을 간파한 중국이 대중(對中) 견제·봉쇄망을 깨는 약한 고리로 문 정부에 접근하고 있어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문 정권이 종전(終戰) 선언과 시진핑 방한에 집착하다 보니, 중국이 점점 주도권을 잡아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이 2021년 12월9일 미국 주도로 처음 개최한 '민주주의 화상 정상회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 회의는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인 중국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종전 선언’ 성사에 총력 외교

올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꺼낸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종전 선언’은 “선언 문안 협의가 마무리 단계”라는 얘기가 나온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이는 문 정부의 총력 외교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이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방증이다.

정부 안에서도 ‘종전 선언’의 효용에 대한 입장이 엇갈린다. “종전 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다”(문 대통령, 2018년 9월25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는 발언과 “(종전 선언으로) 누구도 못 벗어날 틀을 만들어야 한다”(최종건 외교부 1차관, 올해 11월15일 한미전략 포럼)는 주장의 간격은 크다.

‘종전 선언’이 이뤄지면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한미(韓美) 동맹 흔들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 언론인인 도널드 커크는 이달 22일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 힐(Hill)’ 기고문에서 “종전선언은 한국 안보의 핵심을 흔들 뿐 아무 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종전 선언의 유일한 수혜자는 북한이다”고 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 김정은, 문재인 한국 대통령/조선일보 DB

◇‘평화 환상’ 속 무장 해제

핵무장한 북한이 한반도 공산화를 포기하지 않은 마당에, 문 정부가 ‘평화 환상’에서 스스로 무장(武裝)을 해제하고 북한 도와주기에 안달낸다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재확산과 베이징 동계올림픽 등으로 시진핑 총서기의 방한도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문 정부는 다음달 화상 방식 정상회담 개최를 타진하고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중국, 북한에 줄 것도 없고 새로 받을 것도 없다”는 관측이 많다. 북한이 대화에 복귀할 징후나, 중국이 한한령 해제 같은 선물을 줄 가능성이 희박해서다. 하지만 문 정부는 “연말연초가 남북대화 불씨를 살릴 소중한 시간(이인영 통일부 장관, 11월 6일)”이라며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외교안보 수뇌부. (사진 왼쪽부터) 박지원 국정원장,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조선일보DB

◇“동맹과 차기 정부 부담 안 돼야”

전문가들은 “민심(民心)을 수용해 문재인 정부가 외교 노선을 지금이라도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편들기’는 한국이 속한 민주주의 가치(價値)동맹 진영에서의 이탈로 비쳐져 우리의 국가이익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 부담이 되는 측면도 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으로부터는 ‘신뢰’를, 중국으로부터는 ‘존중’을 잃은 결과, 차기 정부의 외교 운신(運身) 폭이 크게 좁아졌다”고 말했다.

본질적으로 중국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경고한 전체주의(全體主義)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14억 중국인을 공산당의 유리감시망 속에 넣고 꽃미남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까지 제한한다. 전 세계에서 ‘오징어 게임’을 볼 수 없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 뿐이다.

'오징어 게임'은 2021년 9월 17일 공개된, 황동혁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456명의 사람들이 456억의 상금이 걸린 미스터리한 데스 게임(death game)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골목 놀이인 오징어에서 제목을 지었다./넷플릭스 제공
영국 '데일리메일'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보고서를 인용해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장기 적출 밀매 장면이 중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며 "중국 당국이 매년 10만명의 반체제 인사와 정치범의 장기를 적출하는 장기 밀매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신장위구르자치구내 강제수용소 격인 직업 훈련소 모습/조선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