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5년이면 미국을 따라잡고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된다” “미중 관계가 전환점 위에 섰다”…. 연초 미중 양국의 작년 경제성장률 성적표가 나온 이후 중국 경제 매체와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세계 1위 경제 대국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작년 성장률은 -3.5%로 1946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2.3% 플러스 성장을 달성했다. 양국 간 국내총생산(GDP) 차이가 크게 줄어든 만큼,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예상보다 빨리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작년 GDP는 14조7000억달러로 미국(20조9000억달러)의 70.3%를 기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GDP의 70%까지 간 나라는 1995년 일본이 유일했다.

◇중 매체, “2025년 미국 추월할 것”

중국 경제 매체 진스(金十)데이터는 지난 3월 “중국의 올해 성장률은 정부 목표치(6%)를 훨씬 넘어 8~9%에 이를 전망”이라며 “2025년이면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위안화 가치가 상승하면 2023년 추월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제 연구기관들도 추월 시점을 앞당기는 추세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는 작년 12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여파에서 회복되는 속도의 차이를 감안하면 2028년 중국의 GDP가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했다. 한 해 전인 2019년에는 2036년 이후 역전될 것으로 봤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도 작년 말 “2028년에 중국이 세계 최고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로브 수바라만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CNBC방송에 “합리적으로 추산하면 2028년 중국이 미국을 앞서게 될 것”이라면서 “위안화 환율이 강세를 보이면 2년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했다.

◇시진핑, “시(時)와 세(勢) 우리 쪽에 있다”

중국 당국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중국 내에서는 세계 1위 경제대국 등극이 시간 문제라는 낙관 무드가 팽배해 있다. 중국 관영 매체에는 작년 하반기부터 “동승서강(東昇西降·동쪽은 뜨고 서쪽은 내려간다)이 국제사회의 큰 추세”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등장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 1월 장관급 고위 간부 토론회에서 “지금 세계는 100년 만의 큰 변화를 겪고 있으며, 시(時)와 세(勢)는 우리 쪽에 있다”고 말했다.

◇GDP 추월해도 미 패권 못 흔들어

국제 전문가들은 중국 경제의 미국 추월이 시간 문제일 것으로 보면서도, 그로 인해 미국의 초강대국 위상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다수이다.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만한 초강대국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다. 경제의 생산성과 부를 상징하는 지표인 1인당 GDP만 해도 중국은 2020년 기준 1만800달러로 미국(6만3000달러)의 6분의 1 수준이다.

미국, 중국, 일본 GDP 추이 / 미중 군사력 비교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는 군사력과 기축통화가 꼽힌다. 중국은 시 주석 집권 이후 대대적인 무기 현대화와 해군력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올해 국방 예산은 2090억달러로 미국(7405억달러)의 28% 수준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초강대국 운영은 돈이 많이 드는 비즈니스로 미국은 나머지 10개 군사 강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쓴다”며 “중국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해 기축통화가 되기도 쉽지 않다. 중국은 10년 전부터 위안화 국제화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아직도 국제 교역 시장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다. BBC에 따르면 미국은 1890년대에 이미 전체 경제 규모에서 영국을 추월했지만 달러화가 파운드화를 대신해 기축통화가 된 것은 1944년 브레턴우즈협정이 체결된 뒤였다. GDP에서 앞서도 패권을 장악하는 데 50년이 더 걸렸다는 것이다.

또 반도체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도 아직 선진국 수준과 적잖은 거리가 있다. 공산당 중심의 권위주의 독재 체제와 낮은 인권 수준으로는 국제사회의 존경과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10년 내 미 군사력과 달러 기축통화 도전 불가능”

중국은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되더라도 한동안 급속한 고령화에 대처하고, 낮아지는 성장률 유지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중국 공산당 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전 편집장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덩위원(鄧聿文)은 3월 24일 도이체벨레 기고문에서 “중국은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해도 교육과 과학기술, 군사 등에 대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며 “10년 내에는 미국의 군사력과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국국장을 지낸 라이언 하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 연구원도 3월 초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이 미국의 대외 정책에 심각한 도전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고령화와 성장률 유지, 주변국 분쟁 등 많은 리스크(위험)를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이 목표대로 계속 전진할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 내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작년 12월 사설에서 “서방 연구기관들이 미국 추월을 얘기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라 경계와 대응을 촉구하는 것”이라며 “GDP에서 앞선다 해도 양국의 전략적 태세가 달라질 건 없다”고 썼다.

[미국 경제·군사력 위협했지만… 결국 무릎꿇은 소련·일본]

미국이 세계 2차대전 이후 세계 패권을 장악한 이후, 미국을 위협한 나라로는 옛소련과 일본이 꼽힌다.

옛소련은 냉전 이후 줄곧 군사력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했다. 1964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집권 이후에는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1970년 전체 경제 규모가 미국의 40% 선을 넘어섰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1970년 철강 생산량 등을 바탕으로 소련의 국민총생산(GNP) 규모가 미국의 60%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브레즈네프 시대에 강화된 중앙집권주의와 사회주의 계획 경제가 성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에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따른 경제적 부담까지 겹치면서 1991년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

군사, 과학기술, 경제 등에 걸쳐 전방위로 미국에 도전했던 소련과 달리 일본은 경제력으로 미국을 추격했다. 일본은 1980년대에 공작기계, 반도체, 가전,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고, 이를 바탕으로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9년에는 소니가 컬럼비아영화사를 인수하고, 미쓰비시가 록펠러센터를 사들여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미국은 대일 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해 일본에 대한 무역 전쟁에 돌입했고, 1985년 뉴욕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를 대폭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고로 일본 기업들은 수출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반면, 미국 기업은 상황이 크게 호전됐다. 플라자합의 당시 일본의 GDP는 미국의 32% 수준이었고, 1995년에는 이 수치가 70% 선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엔고로 큰 타격을 입은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 붕괴까지 겹치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작년 일본의 GDP는 4조9000억달러로 미국(20조9000억달러)의 23%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