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뉴스1

서울대병원의 산과(産科) 전임의(세부 전공 중인 전문의)가 ‘0명’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2년간 산과 전임의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여기에 작년까지 일하던 전임의 2명이 교수 자리를 얻어 모두 떠나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국내 대표 병원인 서울대병원에서 분만 등을 맡는 산과 전임의가 전무하기는 처음이다. 또 서울대병원은 작년부터 산과 전임의 중 교수를 3명 뽑을 계획이었지만, 아직 1명은 충원하지 못했다.

의료계 인사들은 “힘들고 보상은 적은 필수 의료인 산과 기피 현상이 서울대병원까지 번진 것”이라고 했다. 전임의는 ‘수습 의사’인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자기 분야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병원을 떠나지 않고 교수 등이 되기 위해 계속 남아 세부 진료과를 전공 중인 의사를 말한다. 전임의가 없다는 것은 곧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고, 분만 의사를 길러낼 ‘미래 산과 교수’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작년 11~12월 산부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산과 등 세부 전공을 할 전임의를 모집했다. 총 7명이 지원했다. 그런데 이 중 5명은 난임을 다루는 생식내분비과를, 나머지 2명은 요실금 등을 진료하는 비뇨부인과를 지원했다. 재작년에도 산과 지원자는 없었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내 ‘빅5(상위 대형 병원 5곳)’ 전체를 놓고 봐도 산과 전임의 숫자는 2007년 총 20명에서 올해 9명으로 급감했다. 산과 의사들은 “산과의 삼중고(三重苦)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사 2000명이 아니라 2만명을 증원해도 지원자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산과를 기피하게 만드는 삼중고는 ①낮은 수가 ②잦은 응급 상황 ③소송 위험이다.

수가는 의사가 진료·수술 등을 할 때마다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이다. 제왕절개술(초산)의 수가는 위험도에 따라 102만~200만원 정도다. 여기에 본인 부담금 등을 합한 제왕절개 분만비는 250만원 안팎이다. 미국 제왕절개 분만비(약 2200만원)의 11%, 일본(약 700만원)의 35% 수준이다. 원가에도 못 미쳐 분만을 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대학 병원은 상급 종합병원 지정 조건인 ‘분만실 설치’ 요건만 갖춘 뒤 인력은 최소한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서울대병원의 한 산과 교수는 “이래서 대학 병원 산과 교수의 월평균 분만 건수(30~40건)는 분만 전문 병원 의사(10~20건)의 두 배 정도 된다”며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산부인과의 응급 상황은 대부분 산과에서 발생한다. 고위험 임신부 수술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의 한 산과 교수는 “많을 때는 한 달에 25번 밤이나 주말에 응급 환자를 진료·수술하러 병원에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고위험 분만을 하기 때문에 소송 위험도 큰 편이다. 지금도 분만 사고 때 의사의 무과실이 입증되면 국가가 전액을 보상한다. 하지만 ‘무과실 입증’이 쉽지 않아 대부분은 소송으로 간다. 그런데 최근 산과 소송에서 배상액이 10억~15억원에 이르는 판결이 나오고 있어 산과를 더 기피한다는 것이다.

한 대학 병원 산과 교수는 “서울의 한 대학 병원은 2017년 산과 교수를 모집했지만 지금까지 7년간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며 “분만을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전국 158명인 산과 교수는 2032년엔 125명, 2041년엔 59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전임의

대형 병원에서 전공의(4~5년)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증을 딴 의사 중 병원에 계속 남아 있는 의사. 교수가 되기 위해 보통 1~3년간 세부 전공을 공부하며 진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