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 후속 조치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왼쪽 사진).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월 협의회 긴급 임시 대의원 총회에 참석한 모습(오른쪽 사진).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은 이날 대통령실 청사에서 만나 의대 증원 등 의료 현안과 관련해 140분간 면담을 가졌다. /대통령실·연합뉴스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면담은 오후 2시부터 4시 20분까지 140분간 비공개로 진행됐다. 2월 19일부터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내고 진료 현장을 떠난 지 45일 만이자, 윤 대통령이 2일 “전공의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대화를 제안한 지 이틀 만에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대전협 측에선 박 위원장이 혼자 나왔고, 대통령실에서도 성태윤 정책실장과 김수경 대변인만 배석했다.

하지만 이날 면담 내내 양측은 의정(醫政) 갈등의 핵심 쟁점인 의대 증원 문제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박 위원장은 “비과학적·비합리적인 2000명 증원을 백지화한 뒤 의사 수급 추계 기구 등을 만들어 증원 여부·규모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의료 환경에서 의대 증원은 ‘값싼’ 전공의 노동력을 늘려 병원만 유리하게 만들 뿐 전공의 근로 환경은 더 열악해질 것이란 취지의 언급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은 국민 요구에 따라 추진하는 의료 개혁 과제’라는 점을 들며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픽=이철원

박 위원장은 면담이 끝난 지 두 시간여 뒤 개인 소셜미디어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글을 썼다. 사실상 정부를 비판하며, 이날 면담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실도 200자 남짓한 서면 브리핑을 통해 면담 사실을 전했을 뿐 별도 브리핑을 열진 않았다. 박 위원장 뜻에 따라 사진·영상 촬영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로 공개할 만한 면담 성과가 없었고, 의료계 일각의 반대에도 면담에 응한 박 위원장이 곤란해지는 상황도 막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실은 다만 서면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서면 브리핑 내용에는 박 위원장도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대 증원 문제에선 입장 차가 있었지만, 첨예하게 대립해 온 양측이 처음 마주 앉은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에게 전공의의 열악한 처우와 근무 여건, 현 의료 체계의 문제점도 자세히 설명했다. 또 2월 20일 대전협이 성명을 통해 정부에 제시한 필수 의료 패키지 전면 백지화, 수련 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의료사고 관련 법적 부담 완화 등 7가지 요구 사항에 관해서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박 위원장 발언을 경청한 뒤 의견을 교환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박 위원장이 이날 면담 뒤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며 정부를 비판한 만큼 향후 의료계와 정부가 접점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통령실이 앞서 “2000명이란 숫자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전면 백지화 후 재검토’를 요구하는 전공의들과는 여전히 입장 차가 크다.

대전협은 이날 면담에 앞서 내부 공지를 통해 “(2월 20일) 요구안이 전공의들의 공통된 의견이며, 이 요구안에서 벗어난 협의는 전공의들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언론 플레이를 할 경우, 대응 후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도 했다. 앞으로 정부에서 해올 수 있는 추가적인 중요 제안 등과 관련해서도 “(전공의들의) 최종 결정은 전체 투표로 진행한다”고 했다. 전공의들뿐만 아니라 대한의사협회도 “의대 증원 문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와 정부 안팎에선 이날 면담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는 일단 트인 만큼 환자와 국민을 위해 향후 의정이 계속 소통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대전협 측에서 복수 대표자가 참여하는 추가 면담을 요구할 경우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전협 내부에서도 통일된 의견이 모이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느냐”며 “박 위원장과 대전협 측의 추후 입장 정리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의료계 일각에서 ‘대통령실이 의대 증원 규모를 600명으로 조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설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