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이 한덕수 국무총리의 의대 증원 배분 관련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2000년의 타협이 2035년의 의사 부족을 초래했고, 2024년의 갈등과 분란을 낳았다”고 했다. 2000년엔 정부가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로 역할을 나누는 의약 분업을 추진하자, 의사들이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하면서 처음으로 ‘의료 대란’이 벌어졌다.

당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은 4개월간 장기 파업을 이어갔다. 전공의 약 1만5500명 중 79.5%가 파업에 동참했다.

그해 4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에 걸친 파업 투쟁 당시에는 전국 의원의 75%에 해당하는 1만4100여 곳이 문을 닫았다. 6월 20일부터 진행된 외래 진료를 거부하는 형태의 총파업에는 전국 의원 1만8568개 중 95.8%가 참가해 진료를 중단했다.

정부는 그해 7월 1일부터 의약 분업을 시행했다. 계도 기간 1달을 거쳐 의무 시행은 8월 1일부터였다. 의료계는 8월 1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그해 8월 7일 기준으로 대학교수들과 전공의의 파업 참여 비율은 77.7%에 달했다. 그러자 정부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의대 정원 10% 감축안을 제시했다. 의약 분업을 시행하는 대신 ‘의대 정원 감축’이란 당근을 주며 타협한 셈이다.

당시 3507명이던 의대 정원을 4년에 걸쳐 10%(351명) 줄인 3156명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의대 정원은 2003년 3253명, 2004~2005년 3097명으로 줄었고, 2006년에는 당초 계획보다도 적은 3058명까지 감소했다. 이 의대 정원이 지금까지 19년째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의 타협이 2035년의 의사 부족을 초래했다’는 한 총리의 말은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2000년의 타협으로 인해 의대 정원이 줄어들지 않았다면 현재까지 최소 6600명의 의사가 추가로 배출됐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현재 부족한 의사 수를 5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를 뛰어넘는 규모다.

정부는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수급 전망을 토대로 증원 계획을 확정했다. 올해부터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인데, 이 역시 2000년의 타협이 없었다면 비교적 적은 수의 증원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당시 의대 정원 감축이 없었다면 2035년까지 배출되는 의사는 1만2000명 이상이다.

전국 의대 정원은 이승만 정부 시절 1040명, 박정희 정부 2210명, 전두환 정부 2770명, 노태우 정부 2880명, 김영삼 정부 3260명이었다. 현재 의대 정원은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때보다도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