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1000명 더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만 늘린다고 붕괴 직전인 지방 의료와 외과·소아과 등 필수 의료 분야로 의사가 유입되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정교한 정책으로 지방·필수 의료로 가는 ‘물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18일 전문가들은 “지방 의대는 입시 때부터 해당 지역 학생들을 많이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지방 출신 학생들이 그 인근 지방 의대를 졸업하면 해당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작년에 발간한 ‘의사의 지역 근무 현황 및 유인·유지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 광역시에서 성장한 의사 54.2%, 지방 도 지역에서 성장한 의사 44.2%가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자란 의사의 절반 정도가 지방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얘기다. 반면 성장 지역이 수도권인 의사의 지방 근무 비율은 열 명 중 한 명 정도인 14.2%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픽=이철원

①“지방 의대 선발 때 지역 학생 70~80% 선발”

지금도 지방대 의대들은 ‘지역 인재 특별 전형’을 통해 해당 지역에서 자란 학생들을 40% 이상(강원·제주는 20%)씩 의무적으로 뽑고 있다. 그런데 일부 지방 의대들은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무 비율을 훨씬 초과해 지역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올해 기준으로 동아대(89.8%), 부산대(80%), 전남대(75.2%), 경상국립대(71.7%) 등이다. 동아대 관계자는 “수도권 학생들보다 부산·울산·경남 출신 학생들이 더 지역에 많이 남아 있는다”며 “우리 대학 교수들도 대부분 부·울·경 출신”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학교 의대에서도 ‘최대한 지역 인재를 많이 뽑아 달라’고 입학관리본부에 요청을 한다”고 했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지방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지방 의대 정원의 70~80%를 지역 출신 학생들로 선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방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이 수도권 의대 진학 학생보다 지방에 더 많이 남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작년에 진행한 연구 조사에서도 지방 광역시 소재 의대를 졸업한 의사의 지방 근무 비율은 60.1%였다. 지방 도 소재 의대를 졸업한 의사는 39.5%가 지방에 근무하고 있었다. 반면 수도권 의대를 졸업한 의사는 13.1%만 지방에서 근무했다. 지방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을수록 지방에 남는 의사 인력도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지방 국립대 의대의 정원 확대가 지방 의료 붕괴의 핵심 원인인 ‘의사의 수도권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주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②지방 국립대 입학 정원과 시설 지원 확대

전문가들은 또 “각 지역의 중추 병원인 지방 국립대병원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 실력을 키우려는 지방의 젊은 의사들과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은 환자들을 잡기 위해선 지방에 제대로 된 종합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낙후가 심한 지방 국립대의 인프라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김윤 교수는 “지방 국립대병원이 그 지역의 필수 의료를 책임지도록 정부가 예산·인력 지원을 해야 한다”며 “늘어나는 의대 정원의 3분의 2 정도는 지방 국립대 의대에 줘야 한다”고 했다. 부산대 의대 관계자는 “부산대 의대 정원은 125명인데, 1년 정도만 준비하면 정원을 두 배까지 늘려도 교육·실습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③지역·필수 의료에 ‘별도 선발제’ 도입

권순기 경상대 총장은 “최근 국립대 총장 협의회 차원에서 의대 증원과 함께 입학 때 ‘지역·필수 의료 종사자’ 전형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며 “이 전형 입학자들에겐 장학금을 지급하되 대신 졸업 후 5~10년 해당 지역이나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트랙”이라고 했다.

정부도 지방·필수 의료 육성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의대 입학 정원의 40%를 차지하는 지역 인재 전형 비율을 더 높이고 지역 거주를 택한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필수 의료 분야 수가를 올리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또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정원 규모, 총액 인건비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④지역.필수 의료엔 ‘가산 수가제’도 해야

전문가들은 “인력 지원과 함께 지방·필수 의료에 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지역·필수 의료 가산 수가제’이다. 지방 병원이나 응급의학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 진료 분야의 의료 서비스 가격 단가(수가)를 지금보다 대폭 올려(가산) 의사를 지방에 잡아둬야 한다는 것이다. 김우경 가천대길병원장은 “지방·필수 의료 분야엔 지금보다 수가를 2배로 주는 등의 파격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입학생 증원을 반대하고 있다. 의대생을 늘려도 지방 및 필수 의료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다면 지금처럼 이를 기피하고 피부 미용 등 상대적으로 쉽고 돈 잘 버는 ‘인기 학과’로 의사들이 계속 쏠릴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협은 지방·필수 의료에 대한 수가를 높이고, 의사들의 불가피한 의료 사고에 대해선 면책해 주는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절대적인 의사 숫자를 늘리면 미용 쪽으로 가는 의사도 늘고, 필수 의료로 가는 의사도 늘 것”이라며 “또 의사가 늘어나면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의사 낙수 효과’가 생기는 게 당연한 경제 원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