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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의 A 종합병원이 최근 ‘심장내과 의사에게 연봉 10억원을 주겠다’는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심장내과는 심장 질환 진료와 관상동맥 스텐트 등 심장 시술을 한다. 필수 의료 인력 부족 탓이란 분석과 함께 ‘편하게 돈 벌겠다’는 의사 사회의 전반적 인식이 근본 원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청주의 A 병원은 지난 4월 초 “심장내과 전문의 3명을 1인당 연봉 10억원의 최고 대우로 초빙한다”는 채용 공고를 의사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냈다. 숙소도 병원에서 제공하고, 수술·시술 인센티브와 식대 등도 별도로 지급한다고 공고했다. 특별한 경력은 필요 없고, 학회 참석 역시 보장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고, 토요일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다. 일요일과 다른 공휴일은 쉰다. 야간·주말 당직이 있다. 그런데 마감일인 지난달 13일까지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A 병원은 같은 내용의 2차 공고를 냈다. 지난달 28일이 마감일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지원서를 낸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픽=이철원

이 병원은 현재 심장내과 전문의가 없어 관련 환자를 못 받고 있다고 한다. 이 병원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최고 조건으로 채용 공고를 냈는데 지원자가 없어 당혹스럽다”며 “추가 공고 때 연봉을 더 올리고, 근무시간은 더 줄여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연봉 10억’에도 의사를 못 구하는 상황의 일차적 원인은 필수 진료과인 심장내과 전문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은 힘든데 정부가 지급하는 의료 서비스 단가(수가)는 낮다는 이유로 젊은 의사들이 심장내과 전공을 기피하고 있다.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이지만 힘들고 수입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대한심장학회 등이 올 4월 발표한 ‘심장내과 전문의 수급 추계’에 따르면, 올해 심장내과 전문의는 36명이 부족하다. 부족한 의사 수는 내년에 76명, 2025년엔 120명으로 늘어난다.

청주 A 병원이 이번에 뽑으려 했던 의사는 심장내과 전문의 중에서도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 환자에게 스텐트 시술 등을 하는 심혈관 시술 전문의라고 한다. 그런데 한 해 20~30명 정도만 배출된다. 대도시에 있는 45개 대형 병원(상급 종합병원)에도 한 명씩 배치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숫자다.

의료계에선 의사 인력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수가 인상이 해답”이라고 하고 있다. 정부가 수가를 높여 심장내과 등 필수 진료과 의사들에게 돈을 더 줘야 인력난이 해소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청주 A 병원의 ‘10억 채용 실패’ 사건을 놓고 볼 때 ‘돈이 안 돼서 의사들이 필수 진료과를 기피한다’는 의료계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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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형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챙기면서 편하게 많은 돈을 벌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했다. 한정된 의대 정원으로 의사 집단이 특권층화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의사 사회가 전반적으로 쉽게 돈을 버는 쪽으로 몰려가다 보니 생긴 문제라는 분석이다.

서울의 한 전공의는 “심근경색 응급 환자 등을 받아야 하는 심장내과는 힘들고 리스크도 크다”고 했다. 의대생들 사이에서도 필수 진료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는 찬밥 취급을 당하고 있다. 힘들고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국내 첫 어린이 전문병원인 서울 소화병원은 의사 부족으로 이날부터 휴일 진료를 한시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도 2020년 68.2%에서 지난해 27.5%로 뚝 떨어졌다. 반면 의대생들은 워라밸과 고액 연봉을 기대할 수 있는 인기 전공인 안과·피부과·성형외과에 들어가려고 졸업시험 성적 등을 올리기 위한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필수 진료과 의사를 구하지 못해 환자 진료를 제대로 못 하는 병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지방이 심하다.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은 3억6000만원 연봉을 내걸고 5차례 공고 끝에 1년 만인 지난달 초에야 내과 전문의를 구해 정상 진료를 시작했다. 강원도 속초의료원도 지난 1월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3명이 퇴사해 응급실을 주 4회 단축 운영해 왔다. 연봉 4억원을 줘서 4월에야 겨우 응급실 의사 3명을 충원했다. 경북 울릉군보건의료원도 2년 전 연봉 3억원을 내걸고 9차례 공고 만에 정형외과, 가정의학과 의사를 구했다. 둘 다 70세가 넘은 퇴직 의사였다.

보건복지부는 올 2월 응급수술과 소아 진료, 분만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를 야간이나 공휴일엔 최대 200%까지 인상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필수 의료를 하고자 하는 의사들이 계속 일하도록 하려면 수가 인상으로 적정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연봉 10억원에도 의사를 못 구한 청주 A 병원 사례를 볼 때 수가 인상만으로 의사 구인난을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사 부족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의대 정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2006년부터 18년째 그대로다. 정부가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때 의사들을 달래려고 당시 의대 정원을 3500명에서 단계적으로 축소한 결과다. 그러다 보니 2021년 기준, 한국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명(한의사 제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7명)에도 크게 뒤처지는 최하위권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작년 말 “2035년이 되면 소아과를 비롯한 전체 의사 수가 수요보다 2만7232명 부족해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300~500명을 늘려 2000년 수준을 회복하려 하지만 졸업 등을 감안할 때 필수 의료 인력이 추가 확보될 때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를 도와 절개·봉합 등을 하고 있는 간호사, 즉 ‘피에이(PA·진료 보조)’를 합법화하면 많게는 의사 업무 30%를 대체할 수 있다”며 “그만큼 의사를 증원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조승연 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외국 의사들을 국내로 데려와 필수 의료 등에 활용해야 한다”며 “미국은 의사의 4분의 1, 유럽도 40% 이상이 외국 의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