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경남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 11명이 일제히 구토, 설사, 발열 증상을 보였다. 정부의 역학 조사 결과 이 유치원에선 대표적 식중독 유발 바이러스인 로타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이미 식중독에 걸린 아이가 유치원에 등원해 친구들과 장난감 등을 같이 갖고 놀다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염된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 방역이 풀리면서 학교, 유치원, 기업 등에서 30~40명이 집단으로 식중독에 걸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의 집단 식중독 발생 건수는 20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83건)에 비해 2.5배로 늘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부터 놓고 봐도 올해 집단 식중독 발생 건수(1~4월 기준)는 최근 6년 간 최고 수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이날 “올해 1~3월 접수된 식중독 의심 신고는 146건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같은 기간 평균 신고 건수보다 2배 정도 많다”고 발표했다.

1~4월 ‘집단 식중독’ 발생 건수

식중독은 하절기(5~9월)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올해는 연초부터 집단 식중독이 기승을 부리자 복지부와 교육부 등 중앙 부처와 지자체가 포함된 34개 관계 기관은 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범정부 식중독 대책협의회’를 열었다. 질병관리청도 지난 1일 전국 지자체와 보건소, 검역소와 함께 식중독 비상 방역 체제에 들어갔다. 이달 들어 낮 기온이 20도가 넘는 날이 많아지면서 집단 식중독 위험은 더 커질 것이란 분석이다.

식중독은 수인성·식품 매개 감염병이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어 감염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파된다. 설사·구토·발열 등의 증상을 보인다. 코로나 시기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아 집단 식중독 발생도 급감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234건)과 2021년(470건)의 한 해 집단 식중독 발생 건수는 코로나 이전 수준(600~700건)의 절반 안팎으로 떨어졌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방역이 사실상 해제돼 바깥 활동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집단 식중독 발생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1~4월의 식중독 집단 발병 건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8년과 2019년 같은 기간 발병 건수보다 많다. 정부 관계자는 “코로나 때 여행 등을 참았던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관광지, 식당 등으로 몰리면서 식중독 유발 세균·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파가 이뤄지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된 것”이라고 했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세균은 20개가 넘는다. 바이러스 중엔 노로바이러스와 로타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많다. 반경녀 식약처 식중독예방과장은 “최근엔 노로바이러스의 사람 간 감염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로바이러스는 단 10개의 입자로도 감염될 만큼 전파력이 매우 강하다.

올 1월 경기도 소재 한 기업 구내 식당에서 발생한 집단 식중독 사태의 원인도 노로바이러스였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 기업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회사 임직원 38명은 거의 동시에 설사·구토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구내 식당에서 반찬으로 제공된 생굴무생채에서 노로바이러스가 나왔다.

지난 2월 전북의 한 식당에서 일어난 식중독 집단 발병의 원인도 이 바이러스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은 손님 15명이 구역질과 설사를 해 병원을 찾았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이 식당이 음식을 만들 때 썼던 지하수가 문제였다”고 했다. 이 지하수 속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것이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대표 세균은 살모넬라균, 장병원성대장균 등이다. 올 2월 질병관리청에 보고된 충남의 한 대학 집단 식중독 사태도 세균에 의한 것이었다. 이 대학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학생 38명이 심한 구토와 복통·고열 증세를 호소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구내 식당 음식에서 식중독을 유발하는 클로스트리듐 퍼프린젠스라는 세균이 검출됐다고 한다. 이 세균은 ‘끓여도 안 죽는 균’으로 악명이 높다. 보통 식중독 유발 바이러스와 세균은 75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사멸하지만 이 세균은 고온 등 열악한 환경에선 ‘아포(spore·포자)’ 형태로 생존하다가 온도가 낮아지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식중독 예방의 가장 기본은 손 자주 씻기”라고 했다. 식중독 감염자가 만진 음식 등을 먹고 다른 사람이 식중독에 걸리는 것을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손 씻기라는 것이다. 음식을 조리하기 전후나 화장실 사용 후, 외출에서 돌아온 후에 비누 등 손 세정제로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씻어야 한다.

식약처는 “음식은 익히고, 물은 끓여 먹어야 한다”며 “특히 육류는 75도 이상에서 1분 넘게, 어패류는 85도 이상에서 1분 넘게 익혀야 한다”고 했다. 또 식재료는 흐르는 물로 세척한 뒤 바로 냉장 보관하고, 조리 기구는 열탕이나 살균 소독제로 소독하는 것이 좋다. 특히 자주 사용하는 칼과 도마는 채소용, 육류용, 어류용 등 식재료별로 구분해서 사용하라고 전문가들은 권장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요즘 야외 활동 때 자주 가져가는 김밥 등 조리 식품은 햇볕이 잘 드는 차 안이나 트렁크에 두 시간 이상 두면 식중독균이 증식할 위험이 높다”며 “아이스박스를 이용해 조리 식품은 10도 이하로 보관하는 게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