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여성 A씨는 2년 전 우연히 진통제 ‘펜타닐’을 접했다. 펜타닐 패치를 태워 나오는 연기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얘길 듣고 호기심에 한번 해본 뒤 빠져들었다. 이런저런 통증을 핑계로 처방전을 받았고, 처방전 잘 주는 곳을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결국 금단현상이 심해져 중독 치료에 들어갔지만 오한·공황장애 등 후유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말기암 환자용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DEA

펜타닐은 원래 말기암·척추질환 등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주로 종합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처방하는 마약류 진통제다. 진통 효과가 모르핀의 200배, 헤로인의 1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성과 의존성이 훨씬 강하다. 이런 펜타닐이 젊은층에서 ‘아이스’ ‘작대기’ 등 은어로 불리며 신종 마약처럼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5일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펜타닐(주사제를 제외한 패치제·정제) 국내 처방 건수는 2018년 89만1434건에서 지난해 148만8325건으로 3년 만에 67% 늘었다. 말기 환자 비율이 낮은 10~30대 젊은층의 처방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게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대 이하 펜타닐 처방 건수는 3343건, 20대 2만2205건, 30대 4만5261건으로 7만건에 달한다. 양으로는 10대 이하 1만4786개, 20대 16만6276개, 30대 39만7950개다. 윤흥희 한성대 마약알코올학과 교수(전 서울청 마약수사대 팀장)는 “과거 마약이 4050 중년층 사이에 성행했던 것과 달리 요즘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놀이처럼 유행하고 있다”면서 “지금 펜타닐은 1980년대 비행 청소년들이 자주 마시던 부탄 가스나 본드인 셈”이라고 말했다. 보통 패치 1장에 펜타닐 25~100㎍이 들어 있는데 펜타닐 치사량은 2000㎍(2㎎)에 불과하다.

펜타닐 처방 의원급 의료기관 개수

지난해 5월 경남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경남·부산 일대에서 펜타닐 패치를 허위·불법 처방받아 판매·투약한 10대 후반 42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병·의원에 찾아가 “허리 통증이 심하다” “디스크 수술을 받으려 한다”고 말한 뒤 펜타닐 패치 처방을 받았다. 이들에게 펜타닐을 처방해 준 병·의원은 25곳. 1명이 15차례 처방받은 경우도 있었다.

펜타닐을 처방하는 소규모 의원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펜타닐 패치제 취급 의원 수는 2019년 774개에서 2021년 1195개로 54% 증가했다. 정제(錠劑) 취급 의원도 2019년 79개에서 2021년 100개로 26% 늘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보건복지부 지정 마약 치료 전문병원) 원장은 “펜타닐은 악효가 아주 강한 ‘최후의 진통제’인데, 암 통증이나 강직성 척추염 등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갑자기 늘었을 리 없다”면서 “오남용 사례가 상당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년간 환자 1명이 1999건 펜타닐 처방을 받은 사례, 7만8801개를 처방받은 환자도 있었다. 오남용이 의심되는 경우다. 식약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펜타닐 패치제 권장 처방량은 3일(72시간)당 1장. 1장당 25~100㎍(치사량의 1.25~5%) 펜타닐이 함유돼 있고 초기 용량으로 25㎍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 권장된다. 이 외에도 1회 처방 시 7일 이내 분량만 짧게 처방해야 하고, 추가 처방을 할 때도 1개월 분량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4년간 1999건 처방을 받은 건 1년에 500여 건으로 권장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4년 7만8801개 역시 연간 1만9700개로 기준치를 훌쩍 넘겼다.

식약처 마약관리과 관계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때 오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다른 의료기관 처방 이력도 검토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중독성 오남용을 차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이력 검토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처방전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펜타닐 중독자들 증언이다. 천영훈 원장은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해 환자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처방 이력 정보망 이용률은 18% 정도”라면서 “환자가 밀리면 이런 절차를 일일이 다 확인하지 않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이런 맹점을 젊은층이 악용하면서 펜타닐 중독이 은밀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펜타닐을 다량으로 처방받아 인터넷에서 파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0~20대는 마약류를 인터넷을 통해 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온라인 소관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중독 전문가들과 협업해 유해 콘텐츠를 차단하고 감시·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흥희 교수는 “영국은 영유아 시기부터 약물 관련 교육을 하고 있고, 일본도 청소년을 상대로 지자체에서 전문적인 약물 중독 예방 교육을 한다”면서 “약물 중독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을 조기 도입하는 걸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윤 의원은 “마약성분이 포함된 약품의 오남용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