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국민의 모더나 백신 접종 일정이 14일 줄줄이 연기되자 “생색은 정부가 내고 피해는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약사들과 백신 계약을 맺을 땐 ‘K방역 성과’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더니, 그 후론 어떤 백신이 언제 얼마나 도입되는지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서 느닷없이 ‘예약 대란’ ‘접종 연기' 같은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국민의 백신 접종 차질이 빚어진 이유를 묻자 정부는 이날 “백신 수급은 차질 없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14일 오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50대 예방접종 사전예약 오류 개선 등과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계약할 땐 ‘떠들썩’ 이후엔 ‘잠잠’

정부는 작년 말부터 ‘우리는 외국처럼 확진자가 많지 않아 백신이 급하지 않다’ ‘해외 접종 추이를 본 후 백신 안전성이 확인되면 그때 맞아도 늦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백신 조달 계약을 맺을 때마다 정부 주요 인사들이 앞다퉈 나서 ‘백신 수천만명분 추가 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해왔다. 올 4월엔 “백신 가뭄은 사실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전체 인구(5135만명)의 2배 물량을 확보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3분기 8000만회분, 4분기 9000만회분’ 등 분기별 도입 일정도 이 즈음 발표됐다.

하지만 이후 두 달 가까이 하반기 백신 도입 일정은 전혀 발표되지 않았다. 정부는 3분기를 불과 보름 앞둔 지난달 17일에서야 “7월 물량은 1000만회분, 나머지 7000만회분은 8~9월 도입 예정”이라고 밝혔다. 7월부터 모든 성인이 순조롭게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사과는 어디에도 없었다.

◇8월에 얼마나 들어올지 정부도 “아직 몰라”

7월 절반이 지난 현재까지 국내 도입된 백신은 약 200만회분에 불과하다. 800만회분이 더 들어와야 하지만 어떤 백신이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는 여전히 ‘깜깜이’다. 정부는 백신의 국내 도착 2~3일 전에야 ‘이번에 화이자 백신 50만회분이 들어온다’는 식의 발표를 되풀이하고 있다. 제약사들과의 ‘비밀 유지 협약’ 때문에 세부적인 공급 일정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화이자·모더나 같은 유명 국제 제약사들이 한 달도 아니고, 한 주 단위로 쪼개 비밀 유지를 요구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이걸 반복해야 하나 - 55~59세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이 14일 오후 8시 재개됐지만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예약자들이 또다시 큰 불편을 겪었다. 사진은 한 시민이 이날 오후 8시 30분쯤 접속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 예상 대기 시간으로 ‘107시간’이 표시돼 있다. /장련성 기자

정부가 비밀 유지 조항을 입맛대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지난 12일 “7월까지 확보한 모더나 백신 185만명분에 대한 예약이 끝나 부득이 55세 이상 예약을 중단했다”고 밝혔다가 ‘비밀 유지 조항 위반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모더나 측에 양해를 구했다”고 설명했다. 평상시 국민에겐 알리지 않지만 정부가 필요할 때는 공개할 수 있다는 식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정부가 비밀 유지 조항을 핑계로 백신 도입 차질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와의 소통도 막혀 있다. 방역 당국은 이날 “14일 오후 8시부터 55~59세 접종 예약이 재개된다. 대상자들에게는 지자체와 홈페이지를 통해 알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 방역 당국 관계자는 “접종 재개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대상자에게 개별적으로 알리라는 지침도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깜깜이 백신 정책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8월엔 20~40대까지 백신 1차 접종이 본격 시작될 것”이라고 했지만 당장 다음 달 도입되는 백신 물량이 어느 정도 될지 정부 스스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