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주권자인 최미혜(53)씨는 얼마 전 미국에 사는 딸 집에 방문했다가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맞고 지난 6일 입국했다. 미국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출발 72시간 이내 PCR(유전자증폭) 음성 확인서까지 챙겼다. 하지만 최씨는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2주간 자택 격리 명령을 받았다. 8만5000원을 내고 서울 집까지 ‘방역 택시'를 탔고,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도 추가로 받아야 했다. 최씨는 “접종을 마쳤는데 왜 코로나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 2시간이나 줄을 서 검사를 받고, 2주 동안이나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6일(현지 시각) 미국 델라웨어주 도버에서 열린 나스카컵시리즈 드라이덴 400 자동차 경주를 즐기고 있는 관중들.마스크를 쓰지 않은 관람객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아 있다. 최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방역 수칙을 완화하면서 백신 접종을 마쳤으면 마스크를 쓰지 않고 경기를 볼 수 있게 한 덕분이다./AFP 연합뉴스

◇격리 면제는 한국서 접종받은 경우만

방역 당국이 백신을 해외에서 맞고 입국한 사람들에게도 ‘2주간 자가 격리’를 의무화하면서 반발이 늘고 있다. 입국자들은 “같은 백신인데 한국에서 맞으면 격리가 면제되고, 해외에서 맞으면 안 된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불평한다. 현재 당국은 한국에서 접종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입국 시 격리를 면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대학 봄 학기 종강을 맞아 유학생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유학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나 청와대 게시판에 “해외 백신 접종자에 대해 자가 격리를 면제해달라”는 청원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자가 격리 때문에 귀국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서 근무하는 A(28)씨는 학업을 위해 유럽으로 가기 전 한국에 들를 계획이었지만, 2주 자가 격리 얘기를 듣고 유럽 직행을 결정했다. A씨는 “한국서 여러 일정을 소화할 생각이었지만, 집에만 있어야 한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B씨는 지난달 출장차 미국에 가서 백신을 맞고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 격리 지침이 풀리지 않자 일단 미국에 머물며 재택근무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당국 “ 백신 상호 인증 논의, 아직 초기 단계”

국내 방역 당국은 “여권처럼 믿을 만한 증명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이상, 해외에서 발급한 접종 인증서가 100% 진짜라고 믿기 어렵다”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접종 증명서의) 위·변조 가능성도 있고, 나라마다 서식이 다르기 때문에 접종을 완료했다는 확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 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당국은 접종 사실을 국가가 보장하는 ‘백신 여권’ 도입을 본격 검토하고, 관련 협약을 맺은 국가에 한해 추후 자가 격리를 면제하겠다는 계획이다. 손 반장은 “아직 백신 상호 인증 논의는 초기 단계지만, 결정되는 사안이 있으면 곧바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 등은 현재 외국 정부와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현재 방역 당국은 ‘외국에서 출발일 3일 내에 현지에서 받은 PCR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위·변조 가능성은 백신 접종 증명서든 음성 확인서든 동일하다. 정재훈 가천대 교수는 “접종 증명서를 지닌 사람은 격리를 면제하고, 이후 위·변조 사실이 밝혀질 경우 처벌하면 된다”고 말했다. 천은미 이화여대 교수는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만이라도 우선적으로 격리 해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해외 접종자에 대한 격리 면제는 국내 접종률을 끌어올려 면역력이 어느 정도 형성된 후 검토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백신의 예방 효능이 100%가 아니라는 점, 국내외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격리 면제 확대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위조 백신 인증서가 해외에서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 세계 1200개 이상의 업체가 텔레그램 앱 등을 통해 위조 백신 증명서를 판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