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김연정 객원기자

김 의장은 18일 ‘세계 최고 부자들의 기부 클럽’으로 알려진 미국의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공식 가입했다. 더기빙플레지는 ‘기부(giving)’를 ‘약속(pledge)’한다는 뜻으로, 2010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시작한 억만장자들의 ‘기부 선언’ 캠페인이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재산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라는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최소 5억달러 이상을 기부해야 하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부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레이달리오 브리지워터 회장 부부 등 지금까지 24국 유명 자산가 218명이 이 캠페인에 참여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인은 없었다. 김 의장은 이로써 한국인 1호 참가자가 됐다.

더기빙플레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김봉진 설보미 부부 사진

김 의장은 오래전부터 더기빙플레지 참가를 검토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엔 “‘개인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지인들과 이 사안을 두고 상의했다고 한다. 이전에도 그는 2018~2019년 총 71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 개인 최고 기부액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이는 학생 장학금과 배달의민족 배달 기사 의료·생활비 지원 등에 쓰이고 있다. 김 의장을 시작으로 김지만 쏘카 창업자 등 많은 기업인이 기부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다.

김 의장은 2010년 자본금 3000만원으로 ‘우아한형제들'을 창립한 뒤 배달 앱(배달의민족)을 중심으로 사업을 넓혀 9년 만에 약 4조4300억원(40억달러)에 매각한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신화다. 2019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가 자사 주식 4010만주와 현금 19억유로(약 2조5000억원)를 주고 배달의민족을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김 의장이 받기로 한 딜리버리히어로 지분(9.9%) 가치는 4800억원대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상황을 거치며 음식 배달 서비스 업계가 급성장, 주식 가치가 2.5배 뛰면서 김 의장 재산 규모가 1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더기빙플레지의 ‘재산 절반 이상 기부' 조항에 따라 김 의장은 5500억원 이상을 사회에 환원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수도전기공고를 나와 서울예술대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고, 이후 이모션, 네오위즈, 네이버 등을 다니다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빌 게이츠 등 가입한 더 기빙 플레지

워런 버핏과 빌·멀린다 게이츠 부부 주도로 2010년 미국에서 시작된 기부 캠페인. 10억달러 이상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들이 공개적으로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면 이름이 올라간다. 각 참가자들이 기부를 결심한 계기 등을 홈페이지(givingpledge.org)에 직접 공개하기도 한다.

김봉진 설보미 부부 사진. 이들은 더기빙플레지 홈페이지에 이날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봉진 설보미 부부 더기빙플레지 가입 서약서 전문

안녕하세요 김봉진, 설보미입니다. 우선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 그리고 앞선 218분의 기부 선언자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수많은 창업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 의해 계속 이어져야 하며 그 이야기를 잇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것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와 저의 아내 설보미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자녀들 한나, 주아도 이 결정에 동의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심지어 위 사진은 한나가 찍어준 사진입니다. 그리고 셋째 다니엘은 아직 두 살이라 설명이 불가능해 훗날 자라면 누나들과 잘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 기부 선언문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기부 서약은 제가 쌓은 부가 단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넘어선 신의 축복과 사회적 운, 그리고 수많은 분들의 도움에 의한 것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 형편에 어렵게 예술 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존 롤스의 말처럼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에 따라 그 부를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페이스북을 통해 100억 원을 3년 안에 환원하겠다는 기부 서약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인생의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더 큰 환원을 결정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행복과 보람을 경험했고, 심지어 이를 통해 사업을 더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며, 기부 과정의 실무적인 어려움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그 배움을 통해 우리 부부는 앞으로 교육 불평등에 관한 문제 해결,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 그리고 자선단체들이 더욱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차근차근 구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부 문화를 저해하는 인식적, 제도적 문제들을 개선하는데도 작은 힘이지만 보태려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예상 수명보다 훨씬 더 많이 살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지금 모든 계획을 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과거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지금은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스타트업을 하면서 좌충우돌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러 방식의 기부와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도전과 실패를 통해 지속적으로 배워나갈 것이며, 그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기부문화를 확산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10년 전 창업 초기 20명도 안 되던 작은 회사를 운영할 때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사를 보면서 만약 성공한다면 더 기빙 플레지 선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꿈꾸었는데요. 오늘 선언을 하게 된 것이 무척 감격스럽습니다.제가 꾸었던 꿈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도전하는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누군가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