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아, 늦게 안아줘서 미안해. 이제 엄마, 아빠랑 떨어지지 말자.”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어린이병원 3층 신생아 중환자실. 유재근(35·가명)씨가 포대에 쌓인 갓난아이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 안았다. 체중 3.15㎏. 품에 안긴 아이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엄마 김미소(31·가명)씨가 나흘 전 이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낳은 첫아이 ‘찰떡이’(태명)다.

2020년 마지막 날, 찰떡이(태명) 가족 세 명이 손발을 모았다. 김미소(31·가명)씨가 생후 16일째 찰떡이의 두 발을 감싸고, 그런 김씨 손을 남편이 또 감싸안았다. 세 식구의 새해 소망은 “코로나가 끝나 손잡고 바깥나들이 가는 것”이라고 한다. /김미소씨 제공

김씨 부부는 모두 코로나 확진자였다. 한 달 전 찰떡이 아빠가 먼저 걸려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을 2주 앞두고 아내 곁을 떠나야 했다. 홀로 남겨진 만삭의 김씨는 남편보다 아이 걱정이 컸다. 자신도 검사받았지만 다행히 음성. 그런데 혹시 몰라 다시 받은 검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돼 지난달 9일부터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배 속 아이도 엄마와 함께 세상과 차단됐다.

김씨는 “아이에게 옮길까 두렵고 미안해서 펑펑 울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라고 했다. 아이가 잘못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 자책감이 들었지만 그게 또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싶어 “이를 악물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했다”고 한다. 찰떡이 아빠는 어디서 코로나에 걸렸는지조차 모르는 이른바 ‘깜깜이 환자'였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해 내내 죄인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19일은 이 가족이 온갖 마음고생을 털어버린 날이다. 찰떡이 아빠에 이어 엄마도 격리가 풀리고, 찰떡이도 감염 의심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찰떡이는 그보다 나흘 전 51㎡(약 15.6평) 남짓 음압수술실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갓난아이의 콧속으로 면봉을 넣는 유전자 증폭(PCR) 검사가 이뤄졌다. 두 번 검사 모두 음성 판정이 나오자 이날 비로소 가족 세 명의 첫 대면이 이뤄진 것이다. 모자는 이날 동시 퇴원했다. 그런데 귀갓길 차 안에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엄마 김씨는 “아이를 제대로 안을 수 없더라”고 했다. 감염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서다. 아이 손 잡기도 조심스러워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찰떡이를 품에 꼭 안았다”고 했다.

“참 고맙고 대견해.” 김미소씨가 아들에게 새해 소망을 담아 쓴 손편지.

김씨 부부의 새해 소망은 “코로나가 끝나 세 가족이 나들이 가는 것” “역경을 딛고 태어난 찰떡이가 몸도 마음도 튼튼한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유씨는 “코로나에 걸려보니 코로나 확진자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막연한 선입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올 한 해 코로나로 고생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감사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찰떡이 수술은 박중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팀이 맡았다. 의사 8명, 간호사 4명이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땀을 줄줄 흘리며 3시간 동안 수술을 했다. 박 교수는 “평소보다 훨씬 더 긴장해서 집도했다”면서도 “코로나에 걸린 임신부들이 혹시라도 아이에게 감염될까 봐 걱정을 많이 하는데 의료진을 믿고 마음을 편하게 먹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경기 고양시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도 부부가 모두 코로나에 걸렸지만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 앞서 지난 9월과 11월 태어난 코로나 임신부의 아이도 음성이었다. 이 병원 김의혁 교수는 “코로나가 종식돼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산모 진찰이 새해 소망”이라고 했다.

아가들아, 버텨줘서 고마워

코로나는 신생아도 비켜가지 않는다. 코로나에 걸린 엄마로부터 배 속에서 옮는 ‘수직 감염’ 사례는 아직 없어도 출생 이후 감염된 신생아는 여럿이다. 그러나 가녀린 이 아이들도 코로나와 싸워 이겨내고 있다.

지난 30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린 산모가 낳은 2.9㎏ 남자아이가 인큐베이터에 실려 음압격리병실을 나서고 있다. /일산병원

작년 4월 생후 27일 되던 날 입원한 수애(가명)도 그랬다. 서울보라매병원 한미선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체온이 38.4도까지 오르고 잦은 구토 증세까지 보여 걱정이 컸다”고 했다. 아기 열이 오를 땐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아기 몸을 닦아주고 해열제를 투여했다. 한 교수는 “다행히 모유에선 바이러스가 없더라. 엄마가 마스크 쓴 채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면서 아이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11월에도 코로나에 걸린 생후 11일 아이가 완치돼 이 병원에서 퇴원했다. 병원 측은 “가족들이 아이를 데리고 외래 진료 올 때마다 ‘아이가 잘 크고 있다’ ‘몸무게가 잘 늘고 있다’ ‘몸을 뒤집었다’ 같은 소식을 전해준다”며 “걱정했던 병원 식구들이 이 얘길 전해 듣고는 내 일처럼 기뻐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29일 태어난 진호(가명)는 태어난 지 45일 되던 날 엄마와 함께 확진 판정을 받았다.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병실 밖에서 젖병을 소독하고 물을 끓여주면 엄마가 분유를 타 진호에게 먹였다. 의료진 30여명이 24시간 2교대로 모자 상태를 체크했다. 그렇게 38일이 흘러 모자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동국대경주병원 하경임 교수는 “엄마도 아이도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며 “어려운 병을 잘 버텨주어 정말 고마운데, 진호 덕분에 다른 소아 확진자들을 처치하고 살릴 수 있는 임상 경험까지 얻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토대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