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공동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 중인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미 식품의약국(FDA)이 백신 승인을 늦출 경우 내년 중반기 이후에나 (미국에) 백신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한국 정부가 현재까지 1000만명분의 선구매 계약을 체결한 유일한 백신이다. 정부는 10일 “식약처에서 (자체적으로) 승인을 담당할 것”이라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국내 도입이나 생산이 지체될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승인 늦어질듯

9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을 공동 개발 중인 옥스퍼드대 제너연구소의 애드리언 힐 소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 FDA가 (우리가 개발 중인) 백신의 임상 시험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겠다면 내년 중반(the middle of next year)이 될 때까지는 백신의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힐 소장은 FDA가 신속하게 승인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FDA가 심사가 늦어져 앞으로도 6개월 넘게 기다려야 이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힐 소장은 “FDA가 다음 달에 나오는 자료를 포함해 백신 승인을 검토해줄 것을 희망한다”고 했다.

힐 소장의 ‘내년 중반 이후’ 발언은 전날 뉴욕타임스(NYT)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FDA의 신뢰를 잃고 있어 연내 승인이 불가능하다”고 보도한 데 대한 연구진의 반응이다. NYT는 “내년 1월에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FDA 승인이 나올 수 있다”고 했지만, 힐 소장은 그보다도 훨씬 늦은 시기를 언급한 것이다.

◇3상 먼저 시작했지만, 화이자가 추월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9월 미국 임상 시험에서 참가자 중 두 명에게 나타난 신경학적 증상이 백신과 무관하다는 증거를 FDA에 제출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10월 말까지 7주간 임상 시험이 중단됐다. 이후 진행된 3상 시험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연구진은 백신의 평균 예방 효과가 70%였다고 발표했는데, 뒤늦게 1차 백신 투약량을 절반으로 줄였더니 예방 효과가 90%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추가로 밝혔다. 1·2차 모두 정량을 투여했을 때 예방 효과는 62%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스트라제네카는 왜 투약량을 줄였을 때 효과가 증가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악재가 겹치며 아스트라제네카는 3상 시험을 화이자와 모더나보다 빨리 시작했지만 미 FDA 승인 시기는 뒤처지고 있다. 현재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에서 하는 임상 시험은 FDA가 요구하는 참가자(3만명)의 절반 정도만 모집됐다. 이런 속도를 감안할 때 FDA 요구를 맞추려면 ‘내년 중반 이후’에나 백신 사용이 가능하다는 게 힐 소장 발언의 취지다.

이와 관련, FDA가 유럽에서 개발하는 백신에 대해 유독 까다롭게 대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영하 70도 안팎의 초저온 보관이 필요한 미국의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과 달리 일반 냉장고 온도에서 보관이 가능하고, 1회분에 4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견제한다는 시각이다.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 규제 당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초기 임상 부작용에 대해 다른 나라 규제 기관보다 더 크게 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국내 도입 늦어질 가능성 낮아”

이상원 질병관리청 위기대응분석관은 10일 중앙방역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미 FDA 승인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우리나라 식약처에서 (자체적으로) 승인을 담당할 것”이라며 “국내 도입이나 생산이 지체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식약처는 사용 신청이 들어오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토해 독립적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코로나 백신을 우선 접조아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과 관련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미국에서 생산한 백신이 아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동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일부를 SK바이오사이언스가 생산하기로 했는데, 이 물량은 한국서 사용하기로 협의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는 지난 8일 백신 국내 도입 브리핑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문제 있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명분을 내년 2~3월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전체 물량을 모두 인도받는 시점은 밝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