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화장품 업계, 빨간색 매니큐어를 새끼 손톱에 칠하고 다니는 ‘남자’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괴짜를 넘어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말이 돌았지만, 그는 8년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니 여자를 이해해야 했어요. 그래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여자가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발라도 설거지 한번 하면 까지는 게 매니큐어잖아요. 그렇게 설화수, 이니스프리 브랜드를 론칭했죠.”

이해선 전 코웨이 대표는 40여 년간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햇반, 비트, 설화수, 이니스프리 등 히트작을 만들었다. 2002년엔 화장품 회사에서 헤어 제품을 출시하며 앞머리를 탈색했고 20년 넘게 그 헤어스타일을 유지 중이다. 그는 “여자를 이해하고 싶었다”고 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이해선(69)씨는 브랜드 마케터로 40여 년을 살았다. 잘 알려진 햇반, 비트 등을 만든 주인공이다. 화장품 회사 태평양을 ‘아모레퍼시픽’으로, CJ홈쇼핑을 ‘CJ오쇼핑’이란 이름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은 취미가 회사 이름을 바꾸는 건가’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했어요. 중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이씨는 공군 장교로 제대한 뒤 1982년 삼성그룹 시절 제일제당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했고 빙그레, 아모레퍼시픽, CJ오쇼핑, CJ제일제당, 코웨이 등 굵직한 기업에서 상무, 전무, 부사장,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이렇게 갈고닦은 마케팅 노하우를 담은 책 ‘생각의 크기가 시장의 크기다’를 최근 펴낸 그를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만났다. “AI 시대가 되면 예산을 짜는 사람은 사라질 수 있어요. 하지만 마케터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소비자가 왕

이씨는 언제나 ‘소비자’와 ‘현장’을 우선순위에 뒀다. “브랜드를 만들 땐 늘 반대와 비판이 있어요. 저는 소비자 조사로 그 장애물을 돌파했습니다. 한때는 소비자 조사를 너무 많이 한다고 욕도 먹었어요. 하지만 그걸 앞세워 제 생각을 관철했죠. 대부분 틀리지 않았고요.”

-비트란 이름은 어떻게 나왔나요?

“소비자들에게 아이디어를 받았어요. 비트뿐 아니라 포르테, 워시톱 등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위에선 삼성 자존심에 맞게 ‘넘버원’이라 하라고 했죠. 타사의 세탁비누 이름이 ‘넘버원’이라고 안 된다고 설명해도 다음 날 가면 ‘됐고, 넘버원으로 해’ 그랬어요.”

-그런데요?

“사실 다른 조사에서도 비트가 아니었죠. 2등이었어요. 당시 상품 콘셉트는 강력한 세척력이었고, 짧고 리드미컬한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설득했죠. 그렇게 ‘때가 쏙 비트’가 나온 겁니다.”

-쉽게 설득이 됐네요.

“쉽다고요? 포장지 색을 두고도 의견이 갈렸어요. 위에선 빨간색이 좋다고 하는데, 소비자 조사에선 환경문제 등을 고려한 파란색이 더 낫다고 나왔거든요. 사장단 회의에서도 13대13으로 팽팽한 상황에서 ‘제가 결정하라는 뜻으로 알고 물러가겠다’ 하고 나왔죠. 제가 속칭 깡다구가 있었어요. 소비자가 원하는 파란색으로 결정했고 히트를 쳤죠.”

-그때 직책이 뭐였나요?

“과장이었어요. 이병철 회장님은 ‘늘 과장들 니네가 회사의 주인이야’라고 했지요. 초짜 때부터 중요한 결정을 제가 했어요.

-소비자 니즈 파악이 진짜 중요하군요.

“제일제당에서 비즈니스맨, 샐러리맨을 겨냥한 숙취 해소 음료 출시를 준비할 때가 있었어요. 생활 마케팅 팀장이었는데 비트가 성공하니까 ‘네가 조사 좀 해보라’고 했죠. 그래서 현장으로 나갔어요.”

-그래서요?

“관세청 근처 지하 한 술집을 빌려서 원웨이 미러(한쪽 방향에서만 보이는 유리)를 설치해 손님들을 지켜봤죠. 어떤 분이 오자마자 식탁에 진열돼 있는 음료를 먹더니 ‘이걸 마시니 컨디션 조절이 되는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컨디션’이라고 명명한 겁니다.”

-원래는 그 이름이 아니었나요?

“원래는 ‘속풀이’였어요. 소비자 반응을 조사해 보니 빵점이었죠. 수퍼에서 콩나물 2000원어치 사면 4인 가족이 일주일간 속을 풀 수 있는데 누가 2000원이나 내고 음료수를 사먹냐는 거였고, 또 술 먹고 머리 아픈 뒤에 먹는 게 무슨 의미냐는 거예요. 그래서 컨디션은 ‘술 마시기 전에 마시는 음료’란 콘셉트로 짰습니다. 대박이 났지요.”

-햇반도 그렇게 나왔나요?

“역시나 ‘가마솥밥’ ‘햅쌀밥’ 같은 이름이 후보에 있었어요. 이름은 회장님이 직접 골랐습니다. 그런데 햇반은 용기가 정말 중요했어요. 언제든 갓 지은 쌀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포장재 노하우가 필요했죠. 그걸 찾느라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요. 밥솥에서 만든 밥보다 더 완벽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자부해요.”

◇정리의 달인

그는 창조자이자 파괴자다. 여러 기업에서 많은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많은 브랜드를 없애야 했다. “그래야 새로운 걸 만들 수 있으니까요.”

-빙그레에서도 브랜드를 지어냈더군요.

“빙그레를 아이스크림 회사로 알지만 라면도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그걸 다 없애고 콩기름으로 만든 ‘라면이 아닙니다. 뉴면입니다’란 제품을 만들었죠. 당시엔 60개 정도 되는 브랜드를 없앴어요. 그리고 유제품인 ‘닥터캡슐’을 만들고,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같은 음악을 듣고 자란 젖소의 우유 ‘생큐’도 만들고 그랬죠.”

아이디어를 옮겨 적은 메모장. 수백 권에 이른다. /이해선 제공

-아모레퍼시픽에서도 기존 브랜드를 많이 없앴다고요?

“100여 개 정도 브랜드가 있었어요. 소비자에게 이걸 왜 파는지 콘셉트가 없는 상품도 많았죠. 그걸 버리고 만든 게 설화수와 이니스프리였어요.”

-당연히 내부 반대도 있었죠?

“공개할 수 없는 뒷얘기가 많아요. 브랜드가 100개니까 광고도 100개를 해야 했어요. 돈이 들어가는 거죠. 제가 ‘이 제품은 없애겠다’고 하니 ‘피부과 의사들이 좋아하니 안 된다’ 등 별의별 이유를 대서 반대했습니다. 오너를 설득했어요. 예컨대 화장실 변기에 넣으면 파란색 물이 나오는 상품인 ‘청청’ 같은 건 브랜드 값만 1억 받고 팔았어요. 이런 식으로 정리하니 금세 흑자로 돌아섰고요.”

-설화수는 어떻게 나온 건가요?

“원래는 ‘설화’라는 브랜드였어요. 일본에서 가져온 거였죠. 제가 다 없앤다고 서슬이 시퍼렇게 다니니까 서성환 회장이 ‘그거는 없애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남의 것 빌려서는 내 것이 안 된다’고요. 일본에 가서 일정 금액 주고 사왔고 그렇게 설화수가 탄생했어요.”

◇이런 짓까지 했다

이해선씨는 앞머리 한가운데만 흰색으로 탈색해 올백 헤어 스타일을 하고 다닌다. 매니큐어를 칠했던 2002년 무렵부터 그랬다. “아모레퍼시픽에서 미쟝센이란 헤어 제품 브랜드를 만들 때 ‘매출 1조 될 때까지 브리지를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지금은 제 아이덴티티가 된 거고요(웃음).”

-식품 회사에서 화장품 회사로의 이직은 특이합니다만.

“화장품은 거의 써본 적이 없었어요. 제일제당에서 식물나라 론칭할 때 ‘스킨케어 제품을 바르면 좋구나’ 하는 정도였죠. 그래서 공부를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화장대 사진을 찍어 오라고도 했고, 소비자에게도 받고요. 뭘 많이 쓰는지, 그런 조사를 참 많이 했어요.”

-매니큐어도 그래서 바른 건가요?

“여자가 가진 생각이 뭔지 궁금했어요. 외국에 나가서 제가 화장품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알리려고 한 측면도 있었죠. 설명하지 않아도 그걸 보여주면 ‘아’ 했거든요.”

-이상하게 보지 않던가요?

“서경배 회장님도 잠깐 매니큐어를 칠했는데요, 뭘. 그런데 한번은 사우나에 갔는데, 몸에 문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몸집이 큰 제가 딱 들어가니까, 한 사람이 ‘요즘 매니큐어파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소릴 들었어요. 하하.”

-별났네요.

“비행기 타면 회장님과 함께 얼굴에 오징어처럼 마스크팩도 붙이고 그랬어요. 그런 짓 많이 했죠.”

-앞머리 브리지는 언제까지 할 건가요?

“20년 넘게 했으면 평생 한 거나 다름없는데 10년은 더 해야 할 거 같아요. 이걸로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거든요.”

이해선 한국마케팅협회장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실패가 왜 없었겠나

항상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기업의 오너는 드리머예요. 꿈을 꾸는 사람이죠. 저는 그 일이 성사되도록 준비하는 설계자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 실패가 없을 순 없죠. 그 비율을 줄여야 되고요.”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이 있나요.

“비비고 김치를 만든 거예요. 저는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건 김치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봅니다.”

-실패한 기억이라면?

“신입 사원 때 대형 사고를 친 적이 있어요. 대체 감미료 담당이었는데 용기에 쓴 영어 이름에 ‘E’를 빼먹은 거예요. 이미 2만개를 찍은 상태였어요. 사표를 가지고 과장님한테 갔죠. 그랬더니 ‘이럴 일이 아니고, 잘 팔아서 손해를 복구하고 흑자를 낼 정도로 만들어야지. 그게 진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실패할 때는 어떻게 견뎠나요?

“실패 없이 성공이 되나요. 잘 안 된 브랜드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하지만 중요하지 않아요. 마케팅은 돈을 쓰는 일이에요. 그 말은 잘못하면 돈을 쓰기만 하고 회수 못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타자는 3할만 쳐도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우리는 8할은 돼야 해요. 나머지 2할은 실패할지언정.”

-브랜드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건 뭡니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혼자 지은 브랜드는 거의 없습니다. 현장에서 소비자들에게 피드백을 받은 거죠. 제일제당의 ‘식물나라’도 그렇고, 아모레퍼시픽에서 만든 ‘이니스프리’도 브랜드 공모에서 천안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보낸 엽서로 채택된 겁니다. 제가 상상한 게 아니고 소비자가 던진 걸 잘 포착한 거예요. 그게 성공 비결입니다.”

-또 있을까요?

“본질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떤 커피 브랜드는 유명 연예인을 써서 광고를 하는데 커피 맛은 영 꽝이에요. 처음엔 반짝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 망할 겁니다. 포장보다 내용물이 훨씬 더 중요해요. 작명을 아무리 잘해도 본질이 꽝이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