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뎅, 뎅뎅, 뎅뎅….”

계묘년 새해 첫 경매가 열린 지난 2일 새벽 부산공동어시장. 경매사가 손에 쥔 종을 힘차게 흔들었다. 숫자가 새겨진 모자를 쓴 중도매인들이 경매사 맞은편에 우르르 모여 섰다. 경매사와 중도매인들 사이에는 고등어가 잔뜩 담긴 상자들이 바닥에 끝도 없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십사마안(14만), (십)사만양처언(14만2000), 십사만오천원에 4번! 옆 칸까지만 4번! 십오만, (십)오만워어언, (십)오만오천, (십)육마안, 십육만! 아, 양천(2000)! 십육만이천원에 3칸, 98번!”

경매사가 귀에 쏙쏙 박히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쉴 새 없이 흥정을 붙였다. 외부인에겐 외계어처럼 들리는 독특한 억양과 용어였지만, 중도매인들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쁘게 손을 움직여 경매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끔은 고성과 욕설도 오가는,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이었다.

지난 2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열린 첫 경매에 참여한 중도매인들. 외계어 같은 경매사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쁘게 수신호를 보냈다./김동환 기자

서구 남부민동에 자리한 부산공동어시장의 주인공은 고등어였다. 약 1800t 상당이 21억원에 위판된 이날, 위판량의 절반가량을 고등어가 차지했다. 언뜻 보면 어시장 전체가 고등어로 뒤덮인 듯했다. 대형선망수협에 따르면, 고등어는 한 해 평균 10만t 부산에서 위판된다. 전국 고등어 생산량의 80%가량이다.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국민 생선’ 고등어 대부분이 부산 출신인 셈. 부산시는 “태평양을 누비는 강한 힘으로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양하는 해양 수산 도시 부산을 상징한다”며 고등어를 부산의 시어(市魚)로 지난 2011년 지정했다.

이처럼 부산에서 단순한 생선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가진 고등어가 부산을 떠날 위기에 처했다. 고등어를 잡는 대형 선망 선단이 부산공동어시장을 떠나 전남 장흥, 여수, 목포 등 다른 항구에서 새로운 위판장을 추진 중이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등으로 고등어 어획량도 급감했다.

◇번성했던 ‘고갈비 골목’도 썰렁

싸고 흔하다 보니 부산에서는 고등어를 다양하게 먹는다. 구이, 조림, 회는 물론 추어탕으로도 먹는다. ‘고등어 추어탕’이다. “추어탕은 당연히 미꾸라지”라는 상식을 파괴한다. 고등어 추어탕은 영도와 자갈치시장에서 주로 먹는다. 이른 새벽 하루를 시작하는 뱃사람, 부두 노무자, 시장 상인들이 몰려 사는 곳들이다.

고등어 추어탕을 맛보러 영도 봉래시장에 있는 ‘부산추어탕’을 찾았다. 식당 주인 정옥희씨는 “고등어 추어탕을 여기 영도에서 먹은 지 50년쯤 된 것 같다”고 했다. 뼈째 곱게 가는 미꾸라지 추어탕과 달리,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쌀뜨물에 삶은 고등어를 일일이 손으로 가시를 발라내고 살을 으깬다. 정씨는 “고등어는 뼈가 억세서 믹서기에 갈리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에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래기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고등어 추어탕에 제피 가루와 다진 고추를 풀어 한 숟갈 펐다. 비린내 없이 구수하고 시원하다. 그 많은 고등어 기름을 어떻게 다 걷었는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원래 새벽 4시에 문 열고 자정에 닫았어. 선원들이 한 그릇 후루룩 비우고 새벽 배 타러 가. 밤새 술 먹고 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이걸로 해장하고 집에 들어가는 사람도 많았어. 조선소 사람들도 단골이고. 새마을운동 시절에는 아침 일찍 청소하고 나면 유지들이 주민들과 함께 들어와 밥값 내고 가기도 했지. 지금은 손님도 없고 이어받을 사람도 없어. 딸도 안 하겠다니, 이 음식도 식당도 내가 안 하면 끝날 거야.”

부산 영도 봉래시장에 있는 ‘부산추어탕’의 고등어 추어탕./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부산 광복동 고갈비골목. ‘남마담’ 한 집만 남았다./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고갈비(고등어 갈비)’라는 말도 부산에서 만들어졌다. 고등어 배를 갈라 등뼈가 보이도록 펼쳐서 연탄불에 앞뒤로 노릇노릇 구워낸다. 등뼈가 남아있는 데다, 고등어 살점을 젓가락으로 뜯어 먹다가 남은 등뼈에 붙은 살을 갈비처럼 뜯어 먹어서 고갈비라 부르게 됐다.

용두산공원 아래 광복동 ABC마트(옛 미화당백화점) 뒤편 골목은 ‘고갈비 골목’이라 부른다.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다. 인근 동아대, 해양대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다. 고갈비라는 이름도 동아대 학생들이 1967년 즈음 지어준 게 시초가 돼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고갈비골목은 “싸고 맛있다”고 소문나면서 샐러리맨들까지 즐겨 찾는 곳으로 발전했다.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에는 골목 양쪽으로 열두 집이 고갈비를 구워대는 뿌연 연기로 골목을 채울 정도였다. 지금은 골목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그 많던 고갈비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젊은 사람들의 입맛이 바뀐 데다, 코로나로 술자리 2차가 사라진 게 결정타였다.

고갈비 골목엔 이제 ‘할매집’과 ‘남마담’ 두 집만 남아 있다. 그나마 할매집은 간판만 내건 채 문 닫은 지 오래고, 남마담만 49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2일 찾았을 땐 남마담마저 불이 꺼져 있었다. 주인은 통화에서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며 “열흘쯤 뒤부터 새 주인이 영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했다.

◇대형선망수협도 전남 장흥으로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절대적 위판량을 차지하는 대형선망수협이 빠르면 올해 상반기 전남 장흥으로 옮겨간다. 지난해 10월 대형선망이 전남 장흥군수협과 고등어 선단 유치 협약을 맺었다. 장흥군은 예산 139억원을 투입해 급랭실, 제빙 시설, 선별장 등 고등어 선단 콜드체인 기반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목표대로 오는 6월 준공되면, 고등어가 장흥에서 위판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수산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1~2척 정도 수준이겠지만, 점차적으로 이탈하는 선단과 어획물이 늘어날 가능성과 이로 인해 ‘대한민국 수산 메카 부산’의 위상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역사회에서는 걱정”이라고 했다. 여수와 완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선단 유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앞으로 계속 고등어가 부산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

고등어가 떠나는 배경에는 공동어시장의 오래된 문제들이 있다. 생선 선별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인력이 부족하고 고령화된 탓에 작업 속도가 늦어져 선망이 잡아온 생선을 제때 풀지 못하고, 이는 결국 고기 값 하락으로 이어져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 이 때문에 대형 선망 선단이 장흥 등 다른 항구로 옮겨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대형 선망 관계자는 “생선 선별 작업을 할 항운노조 인력이 500명은 필요한데 현재 350여 명밖에 안 된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과거 연평균 10만 상자를 위판했지만, 요즘은 7만 상자밖에 못 한다. 어획한 고등어를 다음 날 풀면 고기 값이 떨어지니, 선사들이 다른 쪽으로 옮겨갈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획량 급감에 가격은 급등

고등어 어획량도 급감했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상승하면서 어획량이 줄어든 데다, 힌남노·난마돌 등 대형 태풍이 닥치고 연안 해상에 작은 태풍이 잇따르면서 조업이 원활하지 않았다.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지난해 6월에는 국내 고등어 어획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형 선망 선단 18곳 중 2곳이 사상 처음으로 출어를 연기하기도 했다. 대형 선망 선단은 본선 1척, 등선 2척, 운반선 3척 등 모두 6척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하루 기름값만 수천만 원에 달한다.

어획량이 줄면서 운반선 창고를 채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운항 횟수를 줄이다 보니 신선도가 떨어진 고등어가 위판됐다. 상품성 높은 신선 냉장 고등어 물량이 줄면서 고등어 가격이 급등했다.

자갈치시장 생선 구이 백반집 ‘오복식당’은 고등어 무제한 무료 리필을 최근 폐지했다. 주인은 “고등어 값이 너무 올랐다”며 한숨 쉬었다./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고등어·갈치 등 생선 구이 백반으로 이름난 자갈치시장 ‘오복식당’은 지난 35년 동안 유지해온 고등어 무제한 무료 리필(추가) 서비스를 최근 없앴다. 고등어를 더 먹으려면 2~3토막이 담긴 접시당 5000원을 더 내야 한다.

가게 앞에서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고등어를 연탄불에 굽고 있던 식당 주인 정금순씨는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이렇게 큼지막한 생물 고등어만 받아다 쓰는데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했다. “잘은(작은) 고등어를 구우면 이 맛이 안 나. 이만한 고등어가 요즘은 한 상자에 10만원이 넘는다고. 무제한 리필을 줄 수가 없어. 고등어 선단이 저쪽(장흥)으로 옮긴다던데, 그러잖아도 비싼 고등어가 더 비싸질까 봐 걱정이라.”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이 붙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뜻이다. 고령화 속도가 7대 특·광역시 중 가장 빠르다. 부산은 2021년 12월 기준 전체 인구 335만380명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20.4%(68만1885명)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도 10년 전보다 23만명 줄었다. 젊은이뿐 아니라 이제는 고등어마저도 떠나는 건 아닌지, 부산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