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축구를 이끄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빌드업’ ‘압박’ ‘전환’ 세 가지입니다. 수비 진영부터 정확하게 상대 진영으로 볼을 전개하는 빌드업, 상대 팀의 공격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압박, 볼을 빼앗았을 때 상대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파고드는 전환 이 세 가지를 두루 갖춘 팀이 세계 축구를 지배하고 있지요.

지난달 독일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환호하는 일본 축구 대표팀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축구 대표팀은 지난 16강전에서 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를 맞아 이 세 가지를 다 보여줬습니다. 빌드업과 전환의 경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차분한 패스 전환과 역습을 위한 빠른 패스 전개를 두루 활용했습니다. 압박의 경우에도 상대 진영부터 조이는 전방 압박과 아군 진영으로 상대를 깊게 유인해 압박하는 후방 압박까지 시의적절하게 쓰더군요. 비록 승부차기에서 패배했지만 경기 내용은 세련되고 변화무쌍한 ‘트렌디한 축구’가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강호 독일과 스페인을 꺾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증명한 셈이죠.

지난달 27일 일본이 코스타리카에 0대1로 패하자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JFA) 회장이 축구 팬들에게 “실망시켜 죄송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일본 팬들은 “일본 축구는 ‘100년 구상’인데 아직 3분의 1도 지나지 않았다”며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죠.

일본 팬들이 말한 ‘100년 구상’은 1993년 J리그가 출범할 당시 JFA가 “앞으로 100년 이내에 일본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도록 일본 축구를 발전시키겠다”며 내놓은 청사진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공수표가 아닙니다. JFA는 이 100년 구상을 지금도 차근차근, 진지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영국과 독일의 선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고, 협회 차원에서 J리그 구단에 장려금을 줘가며 뛰어난 국내 선수를 유럽에 진출시킵니다. 올해 초 기준 한국 유럽파 선수는 15명, 일본은 이의 6배에 가까운 85명입니다.

J리그 출범 초기부터 브라질의 지쿠와 둥가, 영국의 게리 리네커 등 전성기가 지난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해 리그 흥행과 축구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한 노력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지요. 스페인의 ‘티키타카’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현재 J리그에서 활약 중입니다. 리그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승강제(리그 하위 팀이 하위 리그로 내려가고, 하위 리그 상위 팀이 상위 리그로 승격하는 제도)’의 경우, 일본은 1999년에 도입한 반면 일본보다 10년 먼저 프로 리그를 출범시킨 우리나라는 2012년에야 승강제를 도입했습니다.

풀뿌리 축구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습니다. 대한축구협회(KFA)에 등록된 축구 선수가 9만명인데 JFA에 등록된 축구 선수는 무려 81만명입니다. 프로 선수와 생활 축구인의 경계가 뚜렷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프로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의 간격을 좁히는 데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축구의 인기와 축구 선수의 수가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을 결정한다’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죠.

그럼에도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형 스트라이커가 부재하고 탁월한 신체 조건과 기량을 가진 세계적인 수비수를 찾지 못한 일본 축구의 고질적 한계가 재현됐습니다. 일본은 신체 조건의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패스 중심의 축구로 좋은 미드필더들은 많이 배출했지만, 아직 손흥민이나 김민재 같은 ‘월클’ 공격수와 수비수는 가져본 적이 없죠. 전반전에 고전하던 크로아티아가 후반전에는 장신 공격수와 공중볼을 적극 이용하자 결국 동점골이 터졌고, 이후에도 일본 선수들은 이런 ‘공중전’에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만약 일본에 김민재와 손흥민 같은 선수가 2명 있었다면, 경기 결과는 사뭇 달랐을 듯합니다.

한국도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개선되고 지도자 수준도 빠르게 향상되면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와 선수들은 “일본에 비하면 멀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대한민국 16강의 주역인 황인범 선수가 귀국 직전 “한국 축구가 아등바등해서 16강에 가는 기적이 아니라 일본이나 다른 나라처럼 좋은 모습을 꾸준히 월드컵에서 보여주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겁니다.

일본이 이번 월드컵에서 빌드업과 압박, 전환 세 가지를 다 보여줬다면, 벤투가 이끌었던 한국은 이제 빌드업 하나를 마스터한 것이 두 나라의 간격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은 이미 손흥민, 김민재뿐만 아니라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차범근 등 세계적인 선수를 여럿 배출했죠. 우리가 일본에 견줄 만한 시스템을 갖추기만 하면 일본보다 훨씬 축구 강국이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