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표적 장례 음식 큐티아. 단맛이 나는 곡물 요리다. /유튜브

지난 8월 30일, 소련 공산당의 6대 서기장이자 유일한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서거했다. 향년 91세. 장례식은 생각보다 초라했으니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참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뉴스를 듣고 자연스레 풍자 코미디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2017)를 떠올렸다. 제목뿐만 아니라 역사가 스포일러이기에 줄거리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다. 러시아 초대 공산당 서기장인 스탈린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호전의 기미 없이 사망하자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당황한다. 한편 우왕좌왕 장례를 치르는 물밑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합집산을 벌인다.

스탈린의 사망이 역사적 사실이니 김이 빠질 것 같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러시아와 우방국인 키르기스스탄에서 상영 금지될 정도로 소련 공산당을 비웃는 내용이라 웃음 보따리이며, 2대 서기장 흐루쇼프 역의 스티브 부세미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다. 오죽하면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로 꼽기도 했다.

‘스탈린이 죽었다!’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에서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은 음식이 궁금해진다. 러시아의 장례 음식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장례 문화만큼이나 손님 접대 방식도 다르다. 우리는 장례식장에 딸린 식당에서 육개장과 돼지머리 편육 등의 끼니 음식을, 일본은 ‘부루마이’라는 명목으로 스시 등을 후하게 낸다. 한편 영국이나 미국 등 서양에서는 장례식을 다 치르고 난 뒤 다과를 마련한다. 그렇다면 서양도 동양도 아닌 러시아라면 어떨까? 영화에서는 아주 잠깐, 국빈들이 뷔페가 차려진 연회장으로 들어가는 장면만 나오기에 보고 나면 궁금해진다.

공산당 치하이기에 스탈린의 장례식에서도 따랐을지 약간 의문이지만 러시아의 장례식에서는 정교회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마련한다. 일단 분위기를 보자면 예상이 가능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일상의 식기에 수수한 음식을 낸다. 러시아의 대표 장례 음식은 큐티아(Kutia)로 기장, 쌀, 통밀 등과 꿀, 건포도를 푹 끓여 만든 단맛의 푸딩이다. 큐티아의 곡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꿀과 건포도는 천국의 쾌락을 상징한다.

러시아의 국민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블리니(Blini)도 빠질 수 없다. 메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얇게 부쳐낸 전병인 블리니는 원래 사워크림과 캐비아를 올려 최고의 보드카 안주로 통하는데, 장례식에서는 맨 처음 부쳐낸 블리니를 망자를 위해 창가에 놓아둔 뒤 나머지를 조문객들이 나눠 먹는다. 슬라브족에게는 팬케이크의 둥근 모양이 해와 재탄생을 의미하므로 망자가 천국 혹은 다음 세상으로 고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한다. 장례식을 치르는 가문의 재력에 따라 캐비아와 연어부터 버터나 꿀 등을 얹어 낸다.

정교회의 교리를 따르자면 음주를 자제해야 맞지만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난 판국에 술을 안 마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러시아의 술 보드카가 장례식에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에는 원래 망자를 위해서 물을 담은 잔 위에 빵을 올려 사십 일 동안 두는 풍습이 있는데, 때로 똑같이 무색투명한(그리고 ‘생명수 eau de vie’라 분류되는) 보드카로 대체되기도 한다. 술 혹은 물은 매일 새로 갈았다가 40일째에 버리고, 빵은 부스러뜨려 새 모이로 쓴다.

엉망진창 정국 속에서 스탈린의 장례에 이런 풍습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는 의문이지만, 대부분의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원하는 바를 이룬다. 모두의 눈엣가시였던 경찰총국장 베리야를 숙청했으며 흐루쇼프는 임시로 서기장을 맡았던 2인자 게오르기 말렌코프를 실각시키고 자신이 서기장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손에 넣은 권력은 오래갈 수 없으니 영화는 다가올 혼란을 예고하며 막을 내린다. 이후는 막 세상을 떠난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손에 넣을 때까지 우리가 아는 그대로 흘러왔다. 정확하게 큐티아나 블리니는 아니지만 러시아 음식이 궁금하다면 인천 연수구의 ‘아써르티’를 권한다. ‘종합’이라는 뜻의 상호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빵과 특히 러시아의 전통 케이크 메도빅을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