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백종원과 강형욱을 넘어 이제는 오은영의 시대”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온다. 육아예능 ‘금쪽 같은 내새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해 최근에는 연예인을 비롯해 이혼·MZ세대 고민 등을 다루는 갖가지 TV 프로에 출연 중이다. 지난 21~2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오은영의 토크 콘서트엔 배우 고소영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찾을 정도로 흥행 몰이를 했다.

자녀를 둔 부모뿐 아니라 비혼·비출산·솔로인 2030세대에서도 큰 인기다. 자녀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에게 양육 방식의 문제를 짚어주고 처방을 내리는 오 박사에게 이들은 “부모님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뒤늦은 치유를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갖가지 논란도 잇따르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오은영 박사가 자주 노출될수록 그의 메시지가 선택적으로 소비되면서 왜곡·곡해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지난 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개한 '애티켓' 캠페인 영상에서 오은영 박사가 '아이는 주변을 관찰하고 몸을 계획적으로 다루는 데 미숙할 수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해당 영상에 비난 댓글이 쇄도하자 위원회 측은 영상의 댓글 창을 차단했다. /유튜브 캡처

◇부모를 원망·혐오하는 ‘금쪽이 어른’

실제로 일각에서는 육아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자신의 불행이나 성격적 결함을 부모 탓으로 떠넘기며 부모를 원망하거나 혐오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30대 직장인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보면 오은영 박사의 메시지를 공유한 사람이 자신이 돈이 없거나 연애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것 등 갖가지 문제의 원인을 부모님의 양육에서 찾는 글이 적지 않더라”며 “책임을 부모에게 떠넘기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금쪽같은 내새끼’ 애청자들이 모인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내 성격이 X진따 같아진 건 당신(부모)들 탓”이라거나 “방송 보다 보니 내 성격 망친 부모에게 성질부리고 싶다” “부모가 명절 용돈을 다 뺏어간 탓에 자립심이 없어졌다” “방송 보니 선천적인 걸 제외하면 아이의 잘못은 다 부모 잘못이네” 같은 반응이 적지 않다. 심지어 부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과 저주를 담은 혐오성 글도 적지 않다. 이들에겐 “부모의 올바른 육아가 자녀의 태도와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오은영 박사의 메시지가 “지금 나의 불행과 성격적 결함은 부모가 나를 잘못 키운 탓”으로 변질된 것이다.

◇어른이 되길 거부하려는 어른들

전문가들은 “만약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정서적·신체적 학대를 받았다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강한 분노와 원망의 정서가 형성될 수 있다”면서도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닌데도 ‘금쪽같은 내새끼’가 인기를 얻자 자신의 불행을 쉽게 부모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문제를 오롯이 부모 탓으로만 돌리거나 아이에 대한 포용과 이해만 강조하진 않는다. 아이의 선천적인 특성을 문제 원인으로 지적하거나 적절한 훈육 없이 과도한 애정만 쏟는 부모를 따끔하게 질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철학자들은 “일부 어른들이 마치 아이처럼 오은영 박사의 메시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오 박사의 메시지는 ‘어른이 어른답게 아이들을 포용하고 지킬 선을 명확히 알려주며 키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성인이라면 이런 메시지를 통해 스스로 더 어른다운 어른이 될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데, 일부는 어른이 아닌 아이의 위치에 서서 ‘내가 아이일 때는 그런 좋은 어른이 없었지’와 같은 방식으로 오 박사의 메시지를 소비한다”고 지적했다.

동양철학자 임건순씨는 “한국 사회에서 어른임에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거나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어른이 적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오은영 박사의 인기가 높은 건 개인의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고 더 성숙하려는 ‘근대적 성인’의 관점보다 스스로를 아이의 위치에 두고 끝없이 위로받으려는 ‘선량한 피해자 의식’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아이의 미숙함에 화내는 어른들

최근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애티켓(아이+에티켓)’ 캠페인 영상을 두고도 논란이 벌어졌다. 해당 캠페인 영상에서는 아이가 식당에서 울거나 아이가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 어른과 부딪혀 커피가 쏟아지면서 신발과 옷이 더럽혀진 장면이 나온다. 이어 오 박사가 “아이는 미숙한 점이 많으니 화 내지 말고 ‘괜찮아’라고 말해주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본 네티즌 중 상당수는 “폐를 끼친 아이가 정중하게 사과하도록 가르쳐야지 왜 피해를 입고도 배려하라고 강요하느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오은영 박사의 인기만큼 그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에는 육아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과 세대 간 육아관의 차이가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자유롭고 수평적인 새로운 육아관과 엄격함과 예의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육아관의 갈등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 대부분은 “오은영 박사와 캠페인에 대한 분노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의 잘못과 미숙함은 구분해야 하고, 잘못으로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이가 아니라 그 부모에게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성숙한 태도”라는 것이다. 노정태 위원은 “아이는 미숙하기 때문에 어른이 아니라 아이인 것”이라며 “그런데 아이의 미숙함에 분노를 느끼고 아이에게 직접 표현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어른이 아닌 아이의 위치에 두고 ‘나는 저런 나쁜 아이가 아닌데 왜 미숙하고 나쁜 아이에게 화내지 말라고 하느냐’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동양철학자 임건순씨는 “분명한 점은 인간은 부모와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만큼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가 근대적 의미에서 ‘성인’이 무엇인지 더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