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이라곤 거들떠보지도 않던 후배가 설거지하겠다고 나섰다가 아내가 아끼던 그릇을 깼다. 그릇이 마치 활어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 허공에 붕 뜨더니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아내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설거지는 아무나 하나 그냥 시키는 거나 하지,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살림이란 게 그저 허드렛일이 아니고 다 노하우가 있고 또 사람마다 그 노하우가 각각 다르다. 특히 부부 중 한 사람이 살림을 도맡다시피 했다면 하루아침에 누가 돕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빨래만 해도 옷을 어떻게 나눠서 세탁기를 돌리는지, 세제와 섬유 유연제는 얼마나 넣는지, 물 온도는 몇 도로 맞추는지 다 그 나름의 방식이 있고 규칙이 있다.

다른 후배는 빨래를 개키다가 아내와 다툴 뻔했다고 한다. 자신이 개켜놓은 빨래를 아내가 다 풀어서 다시 개키면서 투덜댔다. 셔츠나 속옷을 개키는 방법이 있는 건 알겠는데 수건도 앞뒤를 가려 개키더란다. 수건엔 앞뒤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수건 개키는 법이 있다면 존중해주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좋다. 살림은 합리성이 아니라 손에 익은 방식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림은 무턱대고 거드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배우는 것이다. 쓰레기 버리기처럼 기초 살림부터 시작해서 설거지나 청소, 빨래 같은 중급 살림, 다림질이나 요리 같은 고급 살림 순으로 조금씩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그 노하우는 이미 살림을 주도해 온 사람의 방식을 따르는 게 좋다.

남편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한 독자는 이메일을 보내 “요즘 남편이 살림을 배우겠다며 크고 작은 사고를 치는데 골치가 아프다”며 “그냥 평생 해온 것처럼 살림은 내가 하고 남편은 뭘 배우든 봉사 활동을 다니든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이 설거지를 하면 그릇이 잘 씻겼나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청소를 하면 구석구석 잘 닦았는지 봐야 하는데 기분 상할까 봐 남편 모르게 해야 하니 그것도 스트레스란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남편이 도와줬으면 하는 살림’ 1위가 청소였고 2위가 ‘가만히 있기’라고 하기에 그것 참 말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지 오가와 유리라는 노후 전문가는 “은퇴 후 가장 사랑받는 남편은 노후 준비 잘해둔 남편이나 요리 잘하는 남편, 아내 말 잘 듣는 남편이 아니라 집에 없는 남편”이라고 말했다. 집에 없어야 사랑받는 신세를 면하려면 시키는 대로 착실히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