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으로 꼽히는 래퍼 디핵은 최근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에서 만나 “난 당구를 해도 큐대에 맞을 정도로 되는 일이 없던 사람”이라며 “내가 이 정도 됐으면, 누구나 나보단 잘될 수 있다. 난 찐따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남강호 기자

2009년 당시 중학생 이동훈에게 학교는 지옥이었다. 교내 이른바 잘나가는 일진 학생들은 그를 심심하면 괴롭혔다. 할머니가 없는 살림에 큰 맘 먹고 사준 새 아디다스 운동화를 한 번만 신어 본다면서 가져가 버리고,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 빼앗아 던져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넌 너무 뚱뚱하고 못생겼어.” 하지만 학교에도, 집에도 입도 뻥긋 안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말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이 없을 거란 걸. 무엇보다 보복이 두려웠다.

그 대신 억울한 마음을 노트에 한 자 한 자 적었다. 하고 싶었던 말, 그러나 하지 못했던 말. 그리고 그가 꿈꾸던 삶. 그때쯤 진수라는 친구를 알게 됐다. 진수와 함께 있을 땐 일진들이 괴롭히지 않았다. 진수와 더 오래 있고 싶었던 그는, 진수가 좋아하던 힙합을 공부하고, 힙합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트에 적힌 글들도 힙합 리듬과 함께 흥얼거렸다.

2021년 유튜브를 통한 ‘아재(아저씨) 픽’ 역주행 곡이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이었다면, 틱톡을 통해 Z 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태생)의 픽(pick)을 받아 역주행한 곡은 디핵(본명 이동훈·28)의 ‘오하요 마이 나이트(OHAYO MY NIGHT)’다. 2020년 6월 발표된 이 곡이 2021년 중순부터 틱톡, 인스타그램에서 배경음악 삽입 용도로 쓰이더니 멜론 차트 3위, 공중파 음악방송 1위 후보까지 올랐다. 지난달 6일에는 ‘틱톡 크리에이터 나잇’에서 특별 단독 공연도 가지며 올해 가장 촉망받는 힙합 가수로 주목받았다. 흔히, 틱톡은 소셜미디어 중 가장 젊고 잘나가는 인싸(인사이더)들이 즐겨 사용하는 플랫폼. 학교 폭력 피해자에서 일진들의 우상이 된 그를 최근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플라츠’에서 만났다.

BTS도 앞지른 역주행

-틱톡 역주행을 예상했나.

“전혀. 파테코라는 친구와 협업한 곡인데 발매 당시 멜론 차트에서 하트(좋아요 기능)가 1000이 넘은 걸 보고 ‘나름 반응이 괜찮구나’ 생각했다. 난 원래 틱톡을 안 하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얼마 전부터 네 노래가 틱톡에서 많이 들린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갑자기 멜론 차트 100위권에 들고, 바로 50위권 안에 들었다. 그때 난 ‘20대의 운을 다 썼구나’ 했다. 그런데 가수 이무진씨가 내 노래를 커버(따라부르기)해주고, 배구선수 김연경씨가 방송에서 내 노래가 좋다고 말한 후 멜론 차트에서는 (방탄소년단보다 높은) 3위에 오르고 지상파에서도 에스파와 함께 1위 후보에 올랐다.”

-갑자기 차트에서 역주행하다 보니 ‘사재기 논란’도 나왔다.

“그 말이 나왔을 때 너무 좋았다. 내가 ‘사재기 논란’이 나오는 인물이 됐구나. 사재기할 돈도 없고, 사재기해 줄 회사도 없다. ‘오하요 마이 나이트’ 뮤직비디오도 촬영하는 데 하루도 안 걸렸다. 우리 집 앞에서 찍고, 용인 시내에서 찍고. 촬영비보다 식비가 더 들었다(웃음).”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나.

“중학교 때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지켜준 친구 진수가 좋아했던 음악이다. 그때 난 일본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런 것들이 일진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좋았다. 내 뚱뚱했던 체형이나 못생긴 외모도 그들의 타깃이었다.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 빼앗아 집어던지고, 여자아이들은 그걸 보고 손가락질했다. ‘오늘 옥상에서 떨어지면 내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까’ 하고 생각했다.”

가수 효린(왼쪽)과 히트곡 ‘오하요 마이 나이트’를 부르고 있는 래퍼 디핵. / 효린 유튜브

-음악을 시작한 후 일진들 반응은 어땠나.

“중3 때 학교 축제에서 진수와 함께 다이나믹 듀오의 ‘링 마이 벨’을 불렀다. 그때도 모두 비웃었다. 일진들은 ‘네가 뭐라도 될 것 같으냐’며 놀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울면서 진수에게 말했다. ‘나를 비웃었던 애들 전부 무릎 꿇게 한다’고. 그때 악몽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비슷한 상황을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움찔한다. 난 지금도 그때 꿈을 꾼다. 몸은 스물여덟이라 덤빌 수 있다는 생각에 주먹을 뻗는데 주먹이 느리게 나가는 것이다. 결국 보복도 못 한 채 꿈에서 깬다.”

학폭 피해자에서 일진들 우상으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조금씩 힙합에 빠져들었다. 당시 멋져 보였던 ‘핵’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디핵’으로 랩 이름을 짓고 가사를 썼다. 힙합을 배우기 위해 스승들도 찾아다녔다. 그때 힙합계의 음원 강자 래퍼 매드클라운과 라임어택도 만났다.

-매드클라운과 라임어택은 어떻게 만났나.

“고3 때 동네 교회에서 힙합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갔는데 매드클라운이 있었다. 라임어택은 한국국제예술원(구 한국콘서바토리)에 다닐 때 교수님과 제자로 만났다. 두 분 다 강조했던 건 ‘네가 겪었던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라’였다.”

-데뷔는 언제인가.

“첫 녹음은 열여섯 살 때. 그 곡을 싸이월드에 올렸다. 비정규 믹스테이프 앨범은 스물한 살에, 공식적으로 앨범을 발표한 건 스물두 살 때였다.”

디핵의 노래만 접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사생활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가사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대표곡이 된 ‘오하요 마이 나이트’도 시적인 느낌의 가사로 먼저 주목받았다.

“가족이 되어주라/ 내 집이 되어주라/…/그래 별과 우주잖아/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사랑 반을 받아.”

-가사가 생각보다 밝다.

“처음 썼던 가사는 슬픔이었지만, 나중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담았다. 난 늘 사랑을 갈구했다. 내가 여섯 살 때 친엄마가 이혼하고 미국으로 간 후, 할머니와 쭉 같이 자랐다. 할머니는 손자가 방송에 나오는 걸 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계속 떨어져도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에 나갔다. ‘쇼 미 더 머니’ 방송에서 내가 아주 잠깐 나오게 됐을 때, 할머니는 호스피스 병원에 의식도 없이 호흡기를 끼고 계셨다. 그래도 보시길 바라며 TV를 틀어놨었다.”

-가수 활동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공연이 너무 하고 싶었다. 음악을 만드는 건 혼자도 할 수 있는데,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으니깐. 부모님 눈치 보는 것도 힘들고 서러웠다. 아버지가 ‘음악 하면 굶어 죽는다’며 반대하던 걸, 새어머니가 ‘애가 하고 싶다는데 시켜줍시다’라며 시작한 것이라. 공연이 잡혔다가 취소되기도 하고, 조그만 경연 프로에서 돈을 떼이기도 했다. 30만~40만원 정도지만 모든 게 절실한 상황에서 너무 힘들었다. ‘난 역시 안 되나’라는 자기 파괴적인 생각도 들고, 인기 래퍼 창모처럼 주변 친구들이 잘되는 걸 보는 것도 힘들었다.”

찐따들의 희망 되고파

반응이 오든 안 오든 그는 꾸준히 음악 활동을 했다. 첫 반응이 온 건 2018년 발매곡 ‘아이타이 플래닛’과 ‘슈퍼스타라이트’.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조금씩 반응이 오며 ‘디핵팬’이 생겼다. 2018년 발표한 ‘미라이 게이트’에 그때 살짝 들뜬 마음을 가사로 담았다. ‘어릴 때 왕따에 신발도 뺏겼던/ 난 이제 발렌(BALEN) 신고 도쿄 위를 걸어/ 난 변한 거야/ 포기란 걸 해보지 않아서.’

-뜨고 나서 연락 온 일진들이 있나?

“많다. 서로 연락처도 없으니깐 뜬금없이 페이스북 전화로 연락이 왔다. 그러곤 하는 말이 ‘내 여자 친구가 네 팬이래’ 이러면서 여자친구 바꿔준다.”

-사과한 사람은 없나?

“있다. ‘쇼 미 더 머니’ 나왔을 때부터 몰래 챙겨 듣고 봤다고. ‘내가 널 친구라고 말하는 것도 기분 나빠할 것 같다’면서 ‘네 CD를 사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잘 지낸다.”

-유명해지니 뭐가 좋은가.

“부모님의 ‘ATM’이 될 수 있다는 것.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것. 지금은 여자 친구도 있고, 여자 친구와 할머니 납골당도 가고, 조카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줄 수 있다. 처음 음악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게 불과 2년 전이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가.

“나와 같은 찐따들에게 힘을 주는 음악. 내가 ‘찐따들 반란’의 시작이고 싶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나보다는 잘난 게 더 많을 것이다. 난 집중력도 떨어지고, 성격도 많이 꼬여 있다.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살아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잘하는 게 없지만, 열심히 했고, 꾸준히 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이 날 보며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롤 모델은?

“김광석, 한대수, 이문세 선생님. 그분들의 노래를 들으면 정말 행복해진다.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

학폭 피해자에서, 일진들의 우상으로 1년 만에 역주행, 1위 후보 올랐던 래퍼 ‘디핵’이 최근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