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작가팀 싱숑이 쓴 판타지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가운데)’과 작가 윤이수의 사극 로맨스 ‘구르미 그린 달빛(왼쪽)’, 작가 추공의 헌터물 ‘나 혼자만 레벨업’. 지난해 웹소설 시장 규모는 6000억원대에 달했다. /카카오페이지, 네이버시리즈

서울에 사는 주부 김모(41)씨는 가족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조용히 노트북을 연다. 연재 중인 웹소설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밥하고, 집 치우고, 아이 둘 뒤치다꺼리하다 보면 집필 시간이 좀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낮에는 주부, 밤에는 작가로 철저히 분리해 사는 그는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연재를 통해 세 권을 출간했다. 분야는 로맨스. 그는 “아직 인기 작가가 아니라서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아이 키우느라 잃어버린 글쓰기 감각,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겁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이모(44)씨도 퇴근하고 나면 웹소설 작가로 변신한다. 아직 데뷔는 하지 않았지만 밤이면 노트북을 켜고 그가 상상한 아이디어를 활자로 옮긴다. 글이 잘 안 써져 막막할 때마다 그를 도와주는 건 편집장 출신 웹소설 유튜버 ‘북마녀’와 웹소설 입문서들. 그는 “웹소설은 기존 소설들과 시점 등 작법(作法)이 달라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바야흐로 ‘웹소설 전성시대’. 웹소설이란 인터넷 소설 플랫폼에서 연재되는 장르소설을 말한다. 기원은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PC통신 문학이다. 이후 2000년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등 하이틴 로맨스 계열의 인터넷 소설 시대가 열리더니 2010년대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소설 등 모바일 플랫폼이 열리며 ‘웹소설’이 하나의 장르가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소설 시장 규모는 지난해 6000억원대로 2013년 100억원 규모와 비교해 60배 성장했다. 7132억원 규모인 일반 단행본 시장을 위협하는 수치다. 현재 활동 중인 작가도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웹소설 작가들이 급증하는 이유는 우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종이책 인세는 정가의 10% 안팎이지만, 웹소설의 경우엔 30~40% 선이다. 전자책 혹은 종이책 단행본으로 출간되면 2차 수익도 가능하다. 소설가 출신으로 웹소설 작가가 된 이하(쌍매당)씨는 자신의 책 ‘나도 웹소설 한번 써볼까?’에서 “작품마다 약 200화씩 연재했는데 연재 당시에는 월 600만~700만원 정도 벌었다”고 했다.

억대 수입의 작가들도 급격히 증가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전지적 독자 시점’ 등의 인기작은 단일 작품 수입이 100억대가 넘는다.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웹소설 ‘도굴왕’은 영어, 중국어 버전뿐 아니라 최근 일본어 서비스도 시작했다. 문상철 바이프로스트 대표는 “내년부터는 글로벌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와 아마존의 소설 연재 서비스인 ‘벨라’에도 작품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인기 웹소설은 웹툰이나 드라마·영화로 이어지며 지식재산권(IP) 수익으로도 연결된다. 2018년 tvN에서 방영된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약사 출신인 정경윤 작가의 웹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이다. 최근 방영된 판타지 사극 ‘연모’와 ‘옷소매 붉은 끝동’도 웹소설이 원작. ‘전지적 독자 시점’은 영화 ‘신과함께’를 만든 제작사가 영화 제작에 나섰다. 기획사 하이브도 그룹 ‘방탄소년단’을 소재로 웹소설 시장에 뛰어들었다.

진입 장벽이 낮은 것도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유다. 과거엔 소설가가 되려면 오랜 시간 습작을 하며 문장을 가다듬은 후 공모전에 통과하거나, 출판사에서 책이 출간돼야만 가능했다. 그러나 웹소설 작가는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업무 시간도 자유롭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암흑검사’, ‘왕세자의 살인법’ 등을 쓴 ‘초연’은 수원지방검찰청 서아람 검사다.

웹소설 작가들을 받아주는 플랫폼도 많다.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 문피아나 조아라뿐만 아니라 노벨피아, 북팔 웹소설, 포스타입 등 플랫폼도 춘추전국시대다. 웹소설 출판사 역시 2020년 말 기준으로 700여 곳을 넘어섰다. 기존 단행본 출판사들도 웹소설 브랜드를 설립하고 있다. 다산북스는 ‘블라썸’과 ‘몬스터’를, 웅진씽크빅은 ‘사막여우’를, 쌤앤파커스는 ‘북닻’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웹소설 플랫폼들은 매년 수억 원의 상금을 걸고 작가를 모집한다. 지난 5월 개최된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 공모전에는 작가 4000여 명이 참여해 5500편을 출품했다. 이 중 신인 작가는 2100명, 대부분이 회사원, 공무원, 의사, 프로그래머 등 투잡족이다.

물론 누구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웹소설은 웹툰, 웹드라마와 함께 ‘스낵 컬처(snack culture)’라고 부른다. 짧은 시간에 과자를 먹듯 문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뜻이다. 1화와 2화에서 큰 만족도와 사이다 같은 쾌감을 주지 않으면 독자들은 그다음 화로 넘어가지 않는다. 작가 이하씨도 “처음 웹소설을 쓸 때 기존 작법으로 썼더니 ‘여기서 무슨 예술 작품 쓰세요? 뭘 그리 어려운 말을 쓰고 그러시오?’ 등의 댓글이 달렸다”며 “그다음부터는 어쭙잖게 ‘문자’를 쓰지 않고, 최대한 읽기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시점도 다르다. 수많은 인물들의 감정을 모두 아울러야 하기 때문에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동시에 사용한다. 내용적으로는 판타지·무협·로맨스·팬픽(팬이 쓰는 소설) 등이 주류다. 특히,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이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다.

그러다 보니 웹소설 강의도 많아졌다. 2019학년 국내 최초로 웹소설창작전공을 신설한 청강문화산업대는 2022년 모집 인원을 2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렸다. 수성대, 한국영상대, 동국대 등도 웹소설 전공 개설에 나섰다.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는 일반인을 위한 ‘문피아 아카데미’를, KBS도 ‘웹소설 작가 양성 과정’을 운영 중이다.

초보자들을 위한 입문서도 쏟아지고 있다. 올해만 ‘웹소설 써서 먹고 삽니다’ ‘밀리언 뷰 웹소설 비밀코드’ ‘읽다가 밤새는 웹소설의 비밀’ 등 다양한 책들이 나왔다. 유튜브에서는 편집장 출신 웹소설 유튜버 ‘북마녀’ 채널이 구독자 수만 1만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