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데! 문 뭔데! 와 열라꼬 하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30대 남자 목소리. 분노에 찬 이 목소리는 누군가의 구세주다. 서울 관악구에 혼자 거주하는 여성 정모(34)씨는 지난달 늦은 밤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들었다. ‘덜컥’ 하고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리자 정씨는 온몸이 굳는 듯했다. 1시간쯤 지나서야 집 앞 그 사람은 자리를 떠났다. 정씨는 “건장한 목소리로 ‘왜 그러시냐’ 따질 수만 있었다면 벌벌 떨지 않았을 텐데, 여성 혼자 사는 게 드러날까 봐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방범용 목소리를 찾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일명 보이스 가드(Voice Guard). 범죄 타깃이 되지 않으려 일부러 현관에 남자 신발을 두거나,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남자 속옷을 걸어 두었던 이전 방법보다 한층 진화한 형태다. 유튜브에는 보이스 가드 영상이 상황별로 올라와 있다. 배달 음식 또는 택배 받을 때를 위해 ‘거, 문 앞에 두고 가이소!’ 하는 영상이 있는가 하면, 일상적으로 틀어놓을 수 있는 기침 소리까지 등장했다.

실제로 여성 1인 가구 대상 범죄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작년 기준 여성 1인 가구는 333만9000가구로, 20년 전인 127만9000가구의 3배 수준으로 늘었다. 형사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남성과 비교 시 여성 청년 1인 가구의 범죄 피해 가능성은 주거 침입 부문에서 11.2배 높았고, 개인 범죄는 2.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호철(31)씨는 유튜브 채널 ‘대충남’에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올렸다. 얼마 전 여자 친구가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말없이 문을 두드려 무섭다고 하자, 불안감을 덜어주고 싶어 영상을 올렸다고 했다. 구독자들도 영상을 활용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김씨는 “취객이나 괴한을 제 목소리로 돌려보냈다며 감사하다는 쪽지를 받는다”며 “혼자 사는 여성이 얼마나 크게 범죄에 노출돼 있는지 깨닫고, 분노 가득한 목소리 후속 버전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홀로 살고 있는 김수정(28)씨도 2년 전 늦은 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일을 겪었다. 당시 ‘안에서 남자 인기척이 들리면 자리를 뜨겠지’ 하며 인터넷으로 검색했지만 대안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 친구 4명에게 녹음을 부탁해 보이스 가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김씨는 “직접 일을 겪으니 어떤 코멘트가 상황에 따라 필요한지 알게 됐고, 9개 버전의 영상을 채널에 올렸다”고 했다.

보이스 가드 영상을 찾아본 시청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댓글을 통해 갖가지 팁을 공유한다. ‘0.75배속으로 느리게 하면 더 목소리가 굵어지고 화난 느낌이 난다’ ‘블루투스 스피커 연결해서 창문 열고 틀었더니 자취방 내에 평화를 얻었다’ 등의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