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 워뗘. 올 만허니께 왔겄지. 온 사람덜을 도로 보낼 거여, 어쩔 거여.”

지난달 26일 탈레반의 보복을 피해 377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이 한국에 입국했다. 이들은 현지 한국 대사관이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에서 근무했던 직원들로,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체류 자격을 받았다. 이들 중 미성년자는 231명(61%)으로 절반이 넘고, 만 6세 이하 아이도 110명(29%)이나 된다. 이들이 머물 곳은 충북 진천. 이곳에 자리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2주 자가 격리를 마친 뒤, 6주 동안 법무부가 주관하는 한국 적응 교육을 받는다.

또다시 진천이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살아서는 진천에 사는 게 좋다’는 옛말 때문일까. 작년 1월엔 코로나 감염증을 피해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교민 173명이 진천에 머물렀다. 그땐 감염 우려로 입소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지만 이번엔 사뭇 다르다. 곳곳에 “아픔을 함께합니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리는 등 따뜻하게 맞이하는 분위기다.

전국에선 아프간인을 받아들인 진천을 ‘돈쭐(돈+혼쭐) 내자’는 응원까지 펼쳐지고 있다. 진천 농특산물을 파는 온라인숍 ‘진천몰’은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홈페이지가 일시 중단될 정도. 특히 ‘생거진천쌀’ 주문이 폭증했다. 진천 군민들이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지난달 30일, 진천을 찾아가 주민들을 만났다.

① 아프가니스탄 아이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김포의 임시 숙소에서 나와 충북 진천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② 아프간인들이 머물 숙소 앞에 진천 주민들이 ‘아픔을 함께합니다’ ‘환영합니다’ 등이 적힌 플래카드들을 걸었다. ③ 아프간 가족들이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숙소로 들어가는 모습. ④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아프간인 수용에 불안감을 표시하기도 했다./사진=뉴시스, 연합뉴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우한 학습 효과에 실리적 선택”

충북 진천군 덕산읍에 위치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정문 앞 인도에 ‘머무는 동안 편하게 지내다 가시기 바랍니다’ 등의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들이 10여 개 걸려 있었다. 전부 덕산읍 이장협의회와 발전협의회, 진천중앙교회 등 5개 단체가 지난달 27일 입소 당일 설치한 것. 경찰 기동대원들은 개발원 주변을 순찰하며 외부인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날 만난 진천 주민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아프간인들을 수용한다고 말했다. 주민 신현조(84)씨는 “열세 살에 한국전쟁 겪고, 스물세 살에 4·19를 겪었는데, 난리 통 피해온 사람들을 어떻게 막겠나”라며 “어려운 사람은 무조건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 시설을 운영하는 이모(58)씨는 “아프간 현지 영상을 봤는데,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탈레반이 끔찍하게 참수하더라”며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반대하고 말고가 있나”라고 했다.

주민들이 아프간인 수용에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학습 효과’ 때문이다. 중국 우한 교민을 수용했던 경험이 오히려 이번 아프간인에 대한 마음의 벽을 낮췄다. 택시 기사 김영환(55)씨는 “작년에 우한 교민들과 살아보니, 걱정한 게 아까울 정도로 아무 문제 없었다”며 “오히려 방역 더 철저히 하고 주민들도 감염 예방 교육받았으니, 이번엔 거부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했다. 권순양(82)씨는 “온다길래 그냥 오는가 보다 했다”며 “하필 또 진천인가 싶다가도, 중국 교민처럼 조용히 있다 가면 아프간인이든 아프리카인이든 어려운 사람 돕는데 왜 마다하겠나”라고 했다.

수용을 반대해봤자 얻을 게 없으니, 흔쾌히 받아들이자는 충청인 특유의 ‘실용적 태도’도 작동했다. 덕산읍발전협의회 이종수 회장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반대하면 ‘님비(NIMBY)’니 뭐니, 지역 이미지만 나빠진다”며 “주민 모두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지진 않아 극적인 환영을 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고 했다. 장동현 진천군의원은 “25일 오전 군수와 의원 간 아프간인 수용에 대해 논의했다”며 “반대한다고 받아들여질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흔쾌히 수용하는 게 실리적으로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일만 터지면 진천 떠올릴라”

진천 주민들이 아프간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건 이들이 입소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 입국 전날인 지난달 25일이 되어서야 법무부와 국무조정실 관계자 주최로 주민설명회가 열렸고, 다음 날 충북지사 주최로 한 번 더 주민 간담회가 열렸다. 두 간담회 모두 후보 지역 논의보다는 확정 사실을 통보하는 자리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다른 부처와 조율이 필요하고 긴박한 상황이라 통보식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지만 주민들이 사정을 이해해 주셨다”며 “진천으로 결정되기 전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보안상 공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진천이 낙점된 이유는 단순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법무연수원 등 대규모 인원을 수용 가능한 생활 시설이 있기 때문. 특히 개발원은 동시에 숙박 가능한 인원이 최대 519명이며, 1인실부터 4인실까지 다양하게 완비돼 있다. 배경석 진천군 홍보팀장은 “국가 공용시설 중 가족 단위로 37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우한 교민을 받아들일 때도 진천이 가진 여건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물론 불안해하는 주민들도 있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우려가 컸다. 미용실을 운영 중인 정모(36)씨는 “여성을 천대하고 억압하는 아프간 관습 때문에, 8세 딸과 이들이 혹여나 마주치면 무슨 일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입소 당일 한 손님은 자녀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당분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조모(49)씨는 “혁신도시 특성상 2030세대, 특히 ‘유모차 부대’들이 많다”며 “주민들 사이에서는 아프간인들이 진천에 정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돈다”고 했다. 송기섭 진천군수는 지난 1일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을 8주 후 제3 지역으로 이송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진천이 아예 ‘격리 수용지’로 굳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깊다. 덕산읍 연구시설에 재직 중인 강모(27)씨는 “혁신도시 진천은 주변 지역보다 정비된 곳,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앞으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외부인을 막무가내로 받아들이면 모두 기피하는 곳이 돼 버릴까 우려된다”고 했다.

◇진천의 항산항심… 전국에선 “돈쭐 냅시다”

진천 군민들의 복잡한 속사정과 달리, 국민들은 감사의 응원을 보내는 중이다. 리얼미터 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7명은 국내로 이송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장기 체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계획에 공감을 표했다. 덩달아 진천 농특산물을 파는 온라인숍 ‘진천몰’ 판매량이 급증하는 중이다. 평소 진천몰에 들어오는 주문은 하루 35~40건 정도지만, 아프간인들의 입소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360건으로 주문량이 열 배가량 늘었다. 진천군 농업기술센터 신현정 주무관은 “가장 주문이 많이 들어온 품목은 진천 특산물 생거진천쌀이었다”며 “매출 증대분은 농산물 생산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진천에 머무는 아프간인들을 위한 기부 물품도 쏟아진다. 법무부는 대한적십자사와 업무협약을 맺어 아프간인을 위한 기부 금품을 접수‧전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대한적십자사에 접수된 기부 물품은 총 2만9900개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1억2000만원 상당에 해당한다.

진천 주민은 어떻게 이방인들을 두 번씩이나 품었을까. 풍수학자인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진천의 넉넉한 기질을 이유로 꼽았다. “항산항심(恒産恒心)이란 말이 있잖아요.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건데, 진천을 두고 한 말 아닌가 싶어요. 비옥한 진천 분지에 사방에 산이 푸근하게 감싸니 옛날부터 쌀이 풍부했죠. 인심 좋게 타향인을 감싸준 주민들 덕에, 살아서는 진천에 있는 게 좋다는 ‘생거진천’이 우한 교민, 아프간인 마음에도 각인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