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솔티독에 대해 쓰며 솔티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솔티(salty)에는 ‘예민한’과 ‘재미있는’이라는 뜻이 있다고. 바닷가에 있는 ‘솔티’라는 이름이 붙은 카페에 갔다가 솔티에 또 다른 뜻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퍼들의 영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솔티독에는 다른 뜻도 있는데, 해군을 말하기도 한다. 그냥 해군은 아니다. 노련한 해군을 솔티독이라고 한다. 바다에서 일하거나 바다에 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솔티’나 ‘솔티독’이 붙는 것 같다. 바다의 소금기가 묻은 그들은 ‘짠 개’가 되는 것이다.

고래잡이 선원들은 럼에 물을 탄 ‘그로그주’를 주로 마셨다. /바인페어

그런데 나는 ‘솔티독’이라고 하면 다른 게 먼저 떠오른다. 선원이다. 그것도 고래잡이를 하는 포경선 선원. <모비 딕>에서 본 그들의 세계가 워낙 생생해서다. 그들은 손도끼로 담배를 피우고, 작살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다.

손도끼의 정식 명칭은 토마호크로, 토마호크 스테이크의 그 토마호크다. 스테이크 모양이 토마호크(도끼)를 닮았다고 해서 토마호크 스테이크가 된 것인데, 토마호크 한쪽에는 도끼가 다른 한쪽에는 담배를 넣을 수 있는 파이프가 달려 있다. 도끼질을 쉴 때는 담배를 피울 수 있는 도끼인 셈이다. 담배를 피울 때마다 도끼를 자기 얼굴로 치켜들어야 하는 것이다. 꽤나 와일드한 투인원 아이템이랄까. 작살 역시 투인원이다. 작살을 꽂는 작살 자루에서 작살을 빼고 뒤집으면 술잔이 된다. 그러니까 자루를 꽂는 구멍이 위로 오게 해서. 실제로 먼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고래잡이에 나선 적이 있던 이 책의 작가 허먼 멜빌이 <모비 딕>에 이런 걸 다 써놓아서 알게 되었다.

피쿼드호의 선장 에이해브가 술을 내놓는 장면에 아주 생생히 그려져 있다. 에이해브가 술을 꺼내오라고 한 후 배에는 흥분이 넘쳐나는데, 배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술을 마신다. 하나는, 술병을 손에서 손으로 돌려가며 마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바로 작살 자루를 술잔으로 삼아 마시는 것이다. 이보다 더 와일드하고 짠 내 나게 술을 마시는 게 가능한가 싶다. 정말 솔티하다.

게다가 에이해브 선장은 자기 연출에 능한 사람답게 극적인 말까지 해서 술맛을 돋운다. 술을 마시라고 독려하면서 그는 어떻게 말하는가. 단숨에 들이켜고 천천히 삼키라고 한다. 또 지금 마시고 있는 술은 악마의 발톱처럼 뜨거운 술이라고 한다. 이렇게만 말해도 술자리가 후끈 달아오를 텐데… 뭘 좀 아는 남자인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한다. 그토록 넘쳐나는 인생도 벌컥벌컥 마시고 나면 온데간데없어진다고. 그래? 어쩌라고? 그럼 어째야 하는데?

마실 수밖에. 그렇다. 그는 인생이 곧 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마셔야지. 인생을 마셔버리고, 술 속에서 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니까… 지금… 술을 벌컥벌컥 마셔서 인생을 모두 없애버리자는 건가? 그런 말인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선원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피가 끓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뛰어난 선동가이기도 한 에이해브의 말과 행동은 과녁에 적중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과녁’은 선원들의 마음이다. 그도 선장이기 전에 선원이기도 했을 테고, 그라는 사람은 무엇보다 선원들이 어디에 환호하는지 그 심리를 꿰뚫고 있어서다.

그런 에이해브를 보면서 포경선원에 대해 이해했다. 포경선원들이 어떤 사람인지, 대체 어떤 마음으로 배를 타는 건지 조금은 알게 되었던 거다. 죽기 싫어 배를 타는 사람이 그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배를 타는 사람들은 돈도 돈이지만 바다와 직접 맞대면하기 위해 배를 타는 사람들이다. 바다의 가혹함에 자신을 내맡기기 위해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심한 자기 모멸을 겪다 어쩌면 자기를 살해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그래서 바다로 나가 쉴 새 없이 날뛰는 완악한 마음을 잠재워보려 하는 것이다. 마음의 불길, 그 어쩔 수 없음을 말이다. 외부의 적이 하도 강력해 내부의 적과 잠시 휴전 중인 상태로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포경선원들.

그래서 자몽주스에 보드카를 타고, 잔 테두리에 소금을 묻혀 먹는 술인 솔티독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죽지 못해, 그러나 죽는 것보다는 살기 위해 배를 타러 나간 사람들인 그들은 이렇게 산뜻한 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과일주스를 탄다고 해도 자몽이 아니라 망고나 두리안을 타야 할 것 같다. 칼로리가 높은 과일을 타야 비바람을 그나마 버틸 수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리고 소금을 잔 테두리에 묻히는 것도 무슨 소용인가 싶다. 이미 충분히 짠 그들은 그 정도의 소금을 더 먹어봤자 특별한 맛이 느껴질까 싶었고. 그들의 입술에는 이미 소금기가 충분히 묻어 있지 않나 싶기 때문에.

대체 왜 이 술의 이름이 솔티독이 된 건지 의아할 따름인데, 칵테일이 재미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이름으로 일단 관심을 끄는데 이름이 실체를 대변해주지 않을 때가 많다. 자몽주스와 보드카만 타면, 그러니까 잔에 소금을 묻히지 않으면 그레이하운드가 된다. 이것도 그렇다. 이렇게 만드는 칵테일과 개 그레이하운드 사이의 유사성이 있기나 한가? 대체 왜 그레이하운드인 거지?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칵테일의 이름은 흥미롭다. 맥거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딱히 극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화적 장치를 맥거핀이라고 하는 것처럼 칵테일의 이름도 그럴 때가 많다. 찬란하게 등장하지만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선원들은 무슨 술을 먹나? 그로그(grog)다. <모비 딕>에서 에이해브가 사환에게 가져오라고 하는 술도 바로 이 그로그주다. 그로기라는 말도 그로기에서 왔다.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복서가 펀치를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그로기’라는 말 말이다.

그로그주가 뭔가 하면 물 탄 럼이다. 그냥 마시기에 럼은 너무 독하기 때문에 물을 타게 되었다고 한다. 럼에 물을 1:1로 타기도 하고, 럼에 물과 라임 등등을 타기도 하는 것 같은데 술이라면 웬만하면 다 관심이 가는 나이지만 이 술은 먹고 싶지가 않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마시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 때문에. 호된 노동도 없이, 호된 바다도 없이 그냥 마신다면 절대로 맛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술이라 그렇다. 나는 이렇게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