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에 점집들이 늘고 있다. 재물운이나 관운을 점치려는 20~30대에게도 인기다. /김두규 교수

종로 ‘인사동 거리’에 점집이 늘고 있다. 건물에 입주한 ‘점집’뿐만 아니라 노점상(텐트형) 점집도 흔하게 본다. 철학원·철학관·역술원·사주카페·작명원 등의 간판들도 모두 같은 업종이다. 점치는 세대도 20~30대 젊은 층으로 확산하고 있다. 기껏 연애운이나 점치던 과거 청춘 남녀들과 달리 요즈음은 주식과 부동산 관련 ‘재물운’과 취업 관련 ‘관운’에 복채를 지불한다.

본디 사주술은 시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담론’이었다. 서기 1600년 전후의 한 단면이다. 1596년 중국에서 이시진의 ‘본초강목’이 출간된다. 6년 후인 1602년 왕긍당의 ‘증치준승’이라는 방대한 의학 서적이 나온다. 11년 후인 1613년 조선에서도 허준의 ‘동의보감’이 나왔다. 같은 시기다. 모두 의약 서적인데, 서로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출간된다. 무엇을 뜻하는가? 당시 중국과 조선의 의약 수준이 비약적으로 발달하였음을 의미한다. 의약의 발달은 이전에 못 고칠 병도 고칠 수 있게 하였다. 죽을 팔자가 살 팔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그 즈음인 1597년 ‘명리정종’이란 책이 중국에서 출간된다. 의약 서적이 아닌 사주 서적이다. 이 책은 지금도 역술인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명리정종’의 저자 장남(張楠)은 강서성 임천현에서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 출신이었다. 당연히 그도 과거에 응시하였다. 그러나 거듭하는 낙방으로 관계 진출을 포기하고 사주·의술‧풍수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넉넉한 재산 덕분으로 그는 ‘명리정종’이란 고전을 후세에 남긴다. 사주발달사에 획을 긋는 책이다.

그는 ‘병약설(病藥說)’이란 새로운 사주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전에 없던 이론이었다. ‘병약설'에 대한 장남의 설명이다. “어떤 것을 병이라 이르는가? 사주팔자 가운데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약이라 하는가? 팔자 가운데 해를 끼치는 것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사주팔자 속에 있는 병을 제거할 때 재물·벼슬·행운이 함께 따른다.”

장남이 ‘병약설’을 제시한 것은 당대 의약 발달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사주술로는 고객의 사주팔자를 제대로 풀이할 수 없었다. 사주·풍수술도 동시대의 문제를 분석·해결하려는 ‘시대 대응 논리’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철학이란 동시대 문제를 사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라고 한 헤겔의 말이 떠오른다. ‘병약설’이라는 새로운 사주 이론을 내놓은 장남은 그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철학자(인문학자)였다.

그로부터 400년이 흘렀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의약의 발달과 풍요로운 의식주 덕분에 “인생 오십!”이 인생 백세!”가 되었다. 치안의 발달로 비명횡사나 객사도 줄었다. “기생 팔자!”라고 무시당한 홍염살·도화살 팔자가 더 각광을 받는다. 인기 연예인 사주이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뿐만 아니라 산천의 토양과 수목, 그리고 농작물도 그 성분이나 크기가 달라졌다. 화학비료·농약·환경오염·기후변화 때문이다. 더불어 400년 전 동의보감이 말하는 약초의 약성도 바뀌었다. 사람의 체질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의보감에 말하기를~’ 운운하고, 철학원(점집) 철학자(점치는 사람)들도 ‘명리정종에 적혀있기를~’ 운운한다.

사주를 포함한 운명예측술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그사이에 발달된 의학·과학이 반영되어야 한다. 변화된 체질과 윤리 및 가치관이 반영되어야 하며, 교통·통신의 발달로 인한 ‘순간이동’이 또한 반영되어야 한다. 조선 왕조에서는 서운관 산하에 명과학(命課學)을 두어 1차 시험(6개 과목), 2차 시험(13개 과목)을 통해 전문가를 선발하였다. 국학(國學) 차원에서 ‘한국적 사주’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