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IoT 카메라를 판매하는 한 이동통신사는 최근 ‘성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역 본부에서 내놓은 광고 문구를 일축했다. 이 광고 문구는 ‘하루쯤은 엄마가 아닌 여자가 되어보세요’였다. 밖에서도 가정용 카메라를 통해 아이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집에 아이를 두고 편하게 외출하라는 ‘주부 맞춤형 광고’였지만, 회의에선 ‘소비자들의 부정적 반응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통신사 관계자는 “최근 성별 갈등이 너무 심각해 논란 소지가 될 만한 문구는 선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직원들에게도 다른 회사의 마케팅 실패 사례를 보여주며 주의를 당부하는 중”이라고 했다.

편의점 GS25의 홍보 포스터를 시작으로 BBQ, 무신사 등이 잇따라 남성 혐오 논란에 휩싸이면서 유통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무슨 트집을 잡혀 성 갈등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혹시라도 문제 소지가 있을까 봐 기존 홍보물을 일제 점검하고 향후 소셜미디어 운영 계획도 모두 보고받는 등 말 그대로 ‘웃픈’ 상황이 됐다”고 했다.

/GS리테일

◇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라고?

논란의 발단은 편의점 브랜드 GS25가 지난 1일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캠핑 행사 홍보 포스터였다. 해당 포스터에서 소시지를 집는 손 모양 일러스트가 ‘남혐(남성 혐오)’ 표현이란 지적이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쏟아졌다. 급진적 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한국 남성의 성기가 손가락보다 작다는 조롱으로 해당 손 동작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또 해당 포스터에 담긴 영어 문구의 뒷글자를 역순으로 읽으면 ‘MEGAL(메갈)’이란 단어가 완성된다며 ‘디자이너가 메갈리아 유저임을 암시하는 포스터’라고 했다.

GS리테일 측이 “문제가 된 이미지는 유료 사이트에서 캠핑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구매한 것이고, 영어 문구는 포털 사이트 번역 결과를 바탕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GS25의 과거 홍보물에서도 비슷한 손 모양이 발견되자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GS25를 불매하자는 글이 올라왔고, 일부는 GS 본사 앞에서 담당 디자이너를 해고하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이때부터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숨은 메갈 찾기 운동’이 시작됐다. 네티즌들은 BBQ, 무신사, CU, 세븐일레븐 등 브랜드들이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며 불매운동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서울경찰청이 올린 도로교통법 개정 관련 홍보물에 사용된 손 모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남성들을 중심으로 불매 조짐이 확산하자 BBQ 등 일부 기업이 “미리 논란을 방지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선제적으로 사과했고, 역시 ‘손 모양’ 논란에 휩싸인 평택시는 문제가 된 포스터와 전단 4000여 장을 전량 수거해 폐기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현재는 폐쇄된 남성 비하 커뮤니티 '메갈리아' 로고. /위키피디아

◇“혹시 우리도?” 위축된 유통업계

유통업계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검수를 거친 홍보 문구도 예상치 못한 트집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식품류를 주로 취급하는 업계 특성상 손으로 음식을 집는 이미지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남혐' 논란에 휩싸여 당황스럽다”면서 “그간 인스타그램에서 ‘오조오억 개’(정말 많다) ‘허버허버’(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양)같이 젊은 세대가 쓰는 신조어를 사용해 왔는데, 이제는 이런 표현까지도 남성 혐오라는 비난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대형 마트 관계자는 “이번 사태 이후 우리 PB 상품에 들어가는 제품의 홍보 문구와 포스터를 일제 점검했다”면서 “태풍이 지나가기까지는 최대한 자세를 낮출 생각”이라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최근 일부 소비자의 비판은 논리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피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남녀 소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감수 위원회를 통해 홍보 문구 점검을 강화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